[곰's] 예수의 부처되기

영화 '미키 17' 감상문

by 소소 쌤

※ 소소의 배우자(일명 곰)가 쓴 글로, 소소와 비슷한 듯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적은 글입니다.

※ 영화 '미키 17'의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영화관에서 영화를 봤다. OTT가 활성화되고, 집에서 실컷 영화를 보겠다고 스크린을 설치하기도 했지만,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건 다른 맛이 있다. 집에서는 이웃에게 행여나 피해가 될까 맘껏 소리를 높일 수 없고, 최신 영화가 스트리밍 될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좋은 화질에 빵빵한 스피커로 보는 블록버스터의 맛은 확실히 다르다.

봉준호 감독의 SF 블랙코미디 블록버스터 미키 17의 개봉 소식을 듣고는 고민 없이 비싼 영화관 티켓을 감당하며 영화관으로 향했다. 오랜만의 영화관 나들이였다.

모든 영화의 해석 및 감상은 개인적인 견해로, 감독이 의도한 바가 아닐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종교인이 아니어서 깊이 있는 종교적 지식이 없다. 블랙코미디 영화에 대한 비전문적 감상일 뿐이니 혹시나 틀린 부분이 있더라도 코미디를 보는 것처럼 웃어넘기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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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의 출지구기 블랙코미디


미키 17은 SF 블랙코미디다. 미키는 친구인 티모와 함께 사채를 쓰고 창업했다가 망한 후, 사채업자에게 잡혀 와 빚을 못 갚은 사람이 산 채로 썰려 죽는 것을 보게 된다. 두려움에 떨던 그들은 빚을 갚을 길이 없자 다른 행성으로의 이주를 결심한다. 항공 조정 면허가 있는 티모와 달리 뾰족한 강점이 없던 미키는 경쟁률이 제일 적은 ‘익스펜더블’이라는 부문에 지원한다. 익스펜더블은 지원자의 신체 정보와 기억을 백업한 후, 지원자가 사망하면 모든 잡동사니를 모아 재활용하는 프린트기를 통해 육체를 프린트하고 기억을 업로드하여 되살리며 온갖 실험과 위험한 일을 감당하는 직업이다. 미키는 익스펜더블이 되어 온갖 위험한 일과 인체 실험을 당하며 16번을 죽는다. 그리고 17번째 미키는 새로운 이주 행성인 니플헤임에 도착해 행성 탐사 임무 중 니플헤임에 서식하던 새로운 생명체인 크리퍼와 마주하며 낙오하게 된다. 본부에서는 낙오한 미키 17이 죽었다고 판단하고 미키 18을 프린트하지만 의외로 친절한 크리퍼의 도움으로 되돌아온 미키 17이 미키 18을 마주하며 온갖 사건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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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채찍을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으니


미키는 익스펜더블(소모품)이다. 그는 지구에서 사채업자에게 잡혀 잔인하게 죽임을 당할 것이 두려워 행성 이주를 택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훨씬 더 잔인한 방식으로, 훨씬 많은 죽음을 겪는다.

그는 창의적으로 다양한 방식의 죽음을 맞이한다. 위험한 작업을 하다가 죽는 것은 물론, 심지어 죽지 않을 수 있음에도 살리기 위한 비용보다 다시 프린트하는 비용이 더 저렴하다는 이유로 죽기도 한다. 우주 방사선에 노출되면 얼마 만에 사망하는지 데이터를 얻기 위해 죽기도 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바이러스의 백신을 연구하기 위한 생체실험으로 죽기도 한다. 심지어 효과적인 대량 살상을 위한 생화학 무기 개발을 위한 생체실험으로 죽기도 한다.

그의 고난은 단순히 육체적 고난뿐이 아니다. 온갖 죽음을 그가 감내하며 이주팀을 살리고 있지만 그는 전혀 존중받지 못한다. 친구조차 그를 배신하고, 사랑하는 나샤에게 배신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의 상처와 죽음은 가역적이다. 아무리 상처 내도 다시 프린트됨으로써 다시 완전해진다. 사람들은 쓰다 고장 나면 다시 새 걸로 바꾸면 되는 소모품처럼 미키를 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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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하지만 그는 화내지 않는다. 담담하게 주어진 죽음을 반복한다. 온갖 고통을 티 내지 않고 감내한다. 그의 고통을 대가로 어떤 위업들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생색내지 않는다. 그는 죽어도 부활할 것을 믿는다.

그가 힘든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동력은 사랑이다. 나샤에 대한 사랑은 힘든 생활 가운데 유일한 위안이다. 나샤는 최초의 인류인 루시를 생각나게 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녀의 이름인 “나샤”는 히브리어로 “미혹된, 속이는”이라는 뜻과 “이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녀가 시도했던 두 미키와 잠자리, 그녀와의 생명 만들기 연구 활동(체위 연구)이 결국 아기 옮기기(체위 이름)로 상황 해결의 키가 되는 것을 생각해 보면 재미있다. 생화학 무기 개발 성공 기념사진을 찍을 때 뒤에서 나샤와 미키가 연출하는 피에타는 블랙코미디의 정수다.

사람들은 미키가 각종 잡동사니 폐기물을 이용해 계속 프린트되는 것을 안다. 미키를 멸시하고 조롱하면서도 계속 그에게 다가와 묻는다. “죽음은 어때?” 사람들은 영원히 알 수 없으나 미키만이 알고 있는 유일한 것이 죽음이다. 부활한 그는 유일한 선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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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혹되는 자에게는 지혜가 없느니라


미키는 죽음에 대한 물음에 대답한다. “내가 겪은 건 좀 다른데…” 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부활할 것을 전제한 죽음은 다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의 고난과 역경은 조롱하면서도 그들이 언제가 마주하게 될 죽음에만 관심이 있다. 하지만 죽음은 본질이 아니라 결과다. 본질은 과정이며 삶이다.

케네스 마샬은 이주민들의 우두머리지만 선동꾼이자 거짓 선지자다. 멍청해서 수시로 아내로부터 조언을 받지만, 아내도 그리 똑똑하진 않다. 선동 연설로 대중의 지지를 받으며 대중의 삶을 제한하고 통제한다. 하지만 본인은 아내인 일파 마샬과 호화로운 삶을 즐긴다.

일파 마샬은 소스를 신봉한다. 소스는 메인 음식의 맛을 살려주기 위한 장치일 뿐이지만 소스야말로 가장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본질과 진리는 사실 현실에서도 중요하게 취급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 포장하느냐, 얼마나 훌륭한 교언영색으로 대중의 마음을 미혹하느냐가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그래서 끊임없이 미혹된 대중의 지지를 업고 독재자는 계속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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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마샬 부부는 니플헤임의 토종 생명체를 크리퍼라고 명명하고 말살의 대상, 소스의 재료로 생각한다. 사람과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로 소통이 가능함을 알려도 소통하려고 하지 않는다. 어떠한 노력도 없이 말살을 위해 총과 가스를 동원하기를 망설이지 않는다.

인간에게 잡힌 새끼 크리퍼 “조코”는 인간에게 별다른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 동료가 무분별한 총질에 산산조각 나고 본인이 갈고리에 꿰여 곧 죽을 위기에 처해도 직접적인 공격을 하지 않는다. 단지 살려달라고 외칠뿐이고 그에 모든 크리퍼가 모여들어 함께 외친다.

미키도 동일했다. 끝없이 고통을 감내하며 죽어갔으나 나샤 이외의 사람들은 미키에게 연민을 보이지 않았다.

크리퍼는 하나를 위한 모두였으며, 미키는 모두를 위한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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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익스펜더블은 하나가 아니다. 지구에서 익스펜더블을 운용할 수 없게 된 계기가 있다. 어느 사이코패스 과학자가 본인을 무작위로 복제했고, 그 가운데 하나가 연쇄살인을 저지른다. 복제 인간으로 인한 알리바이로 범죄 수사에 난항을 겪은 지구에서는 그 사건을 통해 하나의 기억을 공유하는 복제인간이 둘 이상 존재하는 상황을 멀티플이라고 칭하고, 발생할 경우 모두를 말소할 것을 결의한다. 이 사건으로 익스펜더블은 지구 밖에서만 운영할 수 있다는 제한도 받게 된다.

미키는 멀티플 상황에 처한다. 그전까지는 어떤 고통도 죽음도 담담하게 받아들이던 미키는 진심으로 삶을 위해 노력하게 된다. 멀티플 이전에는 죽음에 이은 부활을 믿게 되었지만, 멀티플이 된 순간 “미키 17”의 죽음과 “미키 18”의 삶은 별개의 사건이 된다. 전 우주에 미키가 하나였던 시절과는 다르다.

미키는 같은 육체와 같은 기억을 공유하지만, 모두 성격이 달랐다. 기억과 육체가 인간을 이루는 모든 것은 아니다. 같은 환경에서 자란 일란성쌍둥이도 저마다 성격이 다르다. 17과 18은 서로가 다른 사람임을 명확히 인식한다. 그럼에도 서로를 위해 위험을 감수하기도 한다.

미키 18은 초반에 보였던 삶에 대한 열망에도 불구하고, 독재자와 함께 폭사한다. 죽음을 향해 달려가지만, 그의 발걸음에 망설임은 없었다. 모두를 위한 하나이지만, 이는 강요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자유 의지로 선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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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천하 유아독존


독재자의 죽음 후에 미키는 익스펜더블을 프린트하는 기기를 폭파한다. 이는 불멸, 신성의 포기다. 그는 비로소 온전한 사람이 된다. 사실 그의 불멸성은 환상일지 모른다. 미키 17과 미키 18이 별개의 사람이었던 것처럼, 지금까지의 미키들도 부활한다는 믿음에 가려져 진실을 직시하지 않았던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두 미키가 동시에 존재하게 되며 진실을 마주한 순간 비로소 본인의 유일성을 깨달았다. 미키 17은 17이고, 미키 18은 18이다.

아기 부처는 태어나며 선언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이는 나는 우주에서 유일한 존재라는 선언이다. 내가 유일하므로 너도 유일하다. 우리는 저마다 유일성을 가진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다.

미키는 프린트기를 폭파하기 전에 꿈을 꾼다. SF의 고전 “블레이드 러너”에서 인간임을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단서가 꿈으로 표현되듯이 미키가 꾼 꿈은 사람다운 꿈이다. 미키의 꿈속에서 일파 마샬이 케니스 마샬을 프린트한다. 사람인 이상 또다시 거짓 선지자, 선동꾼, 독재자는 반드시 나오고 말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불교에서 부처가 거하는 곳은 도솔천이다. 도솔천은 지족천이라고도 하며,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사람들이 머문다. 그 밑의 세계는 부족함과 갈증이 존재하고, 그 위의 세계는 쾌락이 넘쳐난다. 도솔천에 거하는 이들은 수행을 멈출 수 없다. 아래로는 갈증을 경계하고 위로는 쾌락을 경계해야 한다. 사람이 그렇다. 계속 경계하지 않으면 사람다움을 잃는 것은 순간이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핵심을 놓치며 치장에 너무 신경 쓰고 있진 않은가?
아직 사람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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