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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관식은 되는데 영범은 안 될까?

'폭싹 속았수다'에서 본 다른 시대의 다른 사랑

by 소소 쌤

※ 드라마를 보지 않고 읽으면 이해가 되지 않는 내용이 가득입니다. 스포가 담긴 아주 사적인 드라마 감상문입니다.

요즘 나의 세상은 온통 ‘폭싹 속았수다’다. 3월 내내 퇴근 후 지쳐 돌아와 잠들고 다시 출근하는 일상의 반복 속에서 금요일 밤만을 기다렸다. 모든 긴장을 풀어내고 소파에 누워 ‘폭싹 속았수다’ 4편을 내리 보고 울다 웃으며 묘한 해소감으로 3월을 견뎠다. 드라마가 끝나가는 순간까지 ‘끝나지 말지, 더 계속 하지.’를 속으로 되뇌다 엔딩 크레딧에 한참 앉아 그 여운을 즐겼다. 층층이 쌓고 있는 이 수많은 이야기 속에, 수많은 인물들 저마다의 서사와 감동이 있다. 주말 내내 문득 어떤 장면이 떠오르면 곰(남편)을 붙잡고 '어제 말이야, 폭싹에서 이 장면 참 좋았거든.'하며 복기를 했다. 나는 요즘 거의 '폭싹'때문에 산다고 할 정도로 폭 빠져있다.


애순과 관식의 서사에 내 부모도 있고 나도 있다. 금명, 은명, 영범, 충범에게도 내 삶의 일부를 보고, 광례, 계옥, 춘옥, 상길, 영란에게도 내 주변을 떠올린다. 그래서 빠져든다. 모두가 내 주변에 살아 숨 쉬는 누군가다. 각자가 힘든 각자의 삶 속에서 때로 봄이고 때로 겨울이었던 그 삶을 살아갔다. 그건 참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하게 한 드라마였다.


초반 이 드라마의 큰 흐름을 이끌어가는 것은 애순과 관식의 결혼, 그리고 금명과 영범의 파혼이다. 나는 이 결혼과 파혼에 크게 공감했다. 두 이야기 모두, 마치 내 얘기 마냥 설레다 화내다 널뛰었다. 이렇게 말하면 드라마 같은 사연이 내게도 있는 것 같지만 나는 그저 평범했다. 그러나 미묘하게 경험한 것들이 겹쳐지기도 했다. 그런데 왜 애순과 금명의 사랑의 결말은 달랐을까.


난 금명과 뜨겁게 사랑했지만 부모의 무례함으로부터 금명을 지키지 못한 영범을 탓했다.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착해야 하는 놈. 사랑하는 사람의 상처를 그저 마음 아파하기만 할 뿐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놈.'이라고 생각했다. 관식을 보라. ‘다 엎으라고, 그 뒤는 다 내가 책임지겠다’고 말하며 다른 밥상에 앉아있는 애순을 향해 뒤돌던 단호함이 영범에게는 없었다. 왜 관식은 되는데 영범은 안되느냐고, 영범이 유약한 놈이라고 탓했다.


그러나 곰의 생각은 달랐다. ‘시대가 달랐으니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다.


관식과 영범은 다른 시대를 살았다. 애순과 관식의 시대는 아이들이 저마다 알아서 컸다. 부모는 농사일에, 바다일에 바빴다. 여러 식구(부모와 자식 여럿, 거기에 조부모까지)가 생존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했고 집안 살림을 돌봐야 했다. 그렇기에 아이들은 아주 어린 나이부터 저마다 제 몫을 했다. 살림에 도움이 되는 나뭇가지라도 주워왔으며 관식이처럼 생선을 배달했다. 놀이는 부모의 몫이 아니라, 스스로의 몫이었다. 돌봄 또한 부모만의 몫이 아니라, 형제나 마을 사람들이 함께 하는 몫이었다. 그런 시절을 산 관식은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부지런히, 성실히 움직이며 일찍이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을 배웠다. 부모로부터 일찍이 독립했다. 자신이 선택한 자신의 삶을 묵묵히 살아 냈다. 내 부모가 그러했다.


그러나 금명과 영범 시대의 아이들은 달랐다. 부모가 온 힘을 다해 하나 또는 두 아이를 키웠다. 부모는 자신이 살아온 삶의 결핍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어 하지 않았다. 자신들처럼 고생하지 않기를, 책상에 앉아 공부하여 좀더 좋은 삶을 살기를 바랐다. 부모는 온 힘을 자식에게 쏟아부었다. 예전보다 넉넉해진 시대의 풍요로움으로 더 많은 교육을 시키는 것도, 출세하게 하는 것도 가능했다. 뒷바라지에 애를 쓰고 자신이 하지 못한 꿈을 자식의 성취로 대신했다. 그 결과가 금명과 영범이었다. 부모의 희생적 사랑과 지원을 받으며 그들의 기대만큼 살아내려 애쓰는 금명도, 부모의 뜻을 거스를 수 없는 영범도 결국은 같은 시대의 자식이다. 과거보다 부모와 자식은 더 끈끈하게 붙어, 자식은 부모에게 묘한 죄책감을 느끼는 세대였다. 자신들이 부모의 고생의 열매를 달게 먹어 커왔다는 걸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나 또한 그랬다.


그래서 영범은 관식과 같을 수 없었다. 영범은 자신을 위해 모든 걸 희생했다고, 넌 내 프라이드라고 말하는 부모에게 차갑게 등 돌릴 수 없었다. 자신이 그 희생 위에서 편히 살아왔음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 희생이 없이 오롯이 혼자 세상에 던져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을 수 있다. 금명 또한 부모가 결단코 반대하는 일이 있었다면 이를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 세대에게 부모로부터의 독립은 마치 배신같이 느껴졌고 묘한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어느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지 않겠나. 드라마 속 대사처럼 자식이 고생하면 가슴에서 천둥이 치는 건 시대와 상관없이 똑같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적 상황이 부모의 사랑 방식을 다르게 변화시켰다. 엄격한 가르침으로 키워내던 사랑은, 희생적 부모의 사랑으로, 그다음 시대에는 다정한 친구 같은 부모의 사랑으로 변화했다. 어떤 사랑도 잘못된 것은 없다. 그러나 각 사랑 방식은 그마다의 결핍을 낳았다. 그리고 그 결핍은 다음 세대 부모의 사랑 방식을 변화시켰고 그건 자녀들의 연애와 사랑에도 영향을 끼쳤다.


드라마를 보고 모두가 양관식에게 환호하듯, 우리는 부모로부터 독립해 자신의 사랑을 책임감 있게 지켜나가기를 꿈꾼다. 그것이 부모에 대한 배신이 아니며, 관식이 자신의 부모에게 하듯 도리를 해나갈 수 있을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대가 변하며 바뀐 부모의 사랑 방식도 과거 부모의 사랑 방식에서 배울 점도 있지 않을까. 꼭 말이 아니어도 전해지던 그 시절 투박했던 사랑의 모습 말이다. 애순의 입에 전복을 넣어주던 광례의 사랑처럼.


얼마 전, 아버지의 칠순 모임을 하고 왔다. 내 부모는 자신의 힘으로, 하루도 쉬지 않고 성실히 살아 냈다. 마치 애순과 관식처럼. 지친 세월의 흔적이 얼굴과 손에 가득한데도 그들은 여전히 소녀와 소년이다. 꽃을 보면 코부터 가져가 킁킁 향을 맡는 내 소녀 같은 어머니와 핸드폰을 숨기며 장난을 치는 내 소년 같은 아버지. 철없던 시절에는 그들이 미웠던 적도 있고 지금도 여전히 그들의 잔소리는 버겁다. 그러나 아주 약간은 철이 들어 그들의 삶이 참 아름답고 감사하게 여겨진다. 그들은 그들의 방식으로 나를 사랑했고, 나는 내 방식으로 내 사랑을 만나 우리는 함께 가족사진을 찍었다.


내내 그랬다. 인생은 항상 꽃길은 아니었고 지치는 날들이 무수했다. 애순 시절과 금명 시절 모두 각자의 삶은 때때로 버거웠다. 그 골목마다 버팀목이 곳곳에 필요했다. ‘뭐가 고달퍼?’라고 물어주는 어른과 ‘두들겨’라고 말하면 조용히 등을 토닥여주는 이가 있어야 했다. 그리 생각하니 내 평범한 일상이 기적이 되었다. 기어코 매일 다른 행복을 찾아내는 한평 남짓한 공간의 애순처럼 살아가고 싶어졌다. 내 인생, 마흔의 시작점에 존재해 줘서 참 고마웠던 ‘폭싹 속았수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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