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가스라이팅이 의심된다면

우리가 끝이야(it ends with us)/당연하게도 나는 너를

by 소소 쌤

이제는 흔하고 뻔한 단어가 되어 버린 가스라이팅(gaslighting).

A의 반복된 상황 조작으로 B가 자기 자신을 의심하고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어 결국, A가 B에게 지배력을 행사하여 B를 파국으로 몰고 가는 것을 의미하는 심리적 용어.

10년 전에 곰(남편)이 영화 얘기를 해주며 알려준 생소했던 이 용어가 이제 우리 사회의 일상 용어가 되었다.


가스라이팅은 모든 일상에서 나타날 수 있다. 연인, 가족, 친구, 직장 등 모든 관계 속에서 가능하다. 이 용어가 유행할 때, 사람들은 내가 경험한 수많은 상황들이 가스라이팅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10년 전만 해도 어떤 말로 상처를 받아도 자신의 잘못을 자책하는 법을 먼저 배웠기 때문에 가스라이팅은 참 쉬웠다. ‘화장을 안 하는 건 예의가 없는 거다’ 라거나 ‘사회생활 하려면 애교가 있어야지’ 같은 말을 들으면 내성적이고 꾸밀 줄 모르는 나를 탓하며 고치려 애를 썼다. 그런 사회 분위기였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시대가 변해 지금의 사회는 ‘내가 옳다’, ‘나는 잘못하지 않았다.’ ‘난 소중하다’가 더 중시된다. 사람들은 자신을 자책하게 하던 말들이 가스라이팅이라는 용어로 설명되자, 자신을 의심하지 않고 상대를 탓하기 시작했다.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상처로부터, 가스라이팅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게 되었다.


그 무엇보다 가스라이팅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관계는 연인관계라고 생각한다. 한 번쯤 연인관계에서 이 말을 해 본 적 없는가? ‘너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 너를 사랑해서 하는 조언이야, 나니까 너를 만날 수 있는 거야. 네 친구 이상한 거 아냐?’ 같은 말들. 상대가 잘못 생각했고 내 생각이 옳다를 주장하고 싶어 했던 말들. 상대와의 관계에서 더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더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싶어 했던 말과 행동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던, 이제는 ‘가스라이팅’이라고 이름 붙여지는 말과 행동들.


책, ‘당연하게도 나는 너를(이꽃님)’은 작년 담임을 하던 때, 중학교 1학년 아이들의 추천을 받았다. 아이들은 이꽃님의 책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며 이 책은 꼭 읽어봐야 한다고 했다. 단숨에 읽혔고 아이들이 한 번쯤 읽어볼 필요가 있는 책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최근 청소년들의 연애가 과거에 비해 많아지고 있다. 아이들은 자신이 현재 하고 있는 사랑은 특별한 사랑으로 여긴다. 영화나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되어 평범했던 자신이 특별해지는 느낌을 만끽한다. 이 소설은 그런 여주인공 해주를 그려낸다. 잘 생기고 인기 많은 남학생 해록. 해록의 마음에 들기 위해 머리 모양도 옷도 해록의 취향대로 바꾸고 친구들과 멀어지면서도 자신은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은 원래 그런 것이기 때문에 당연하다 여긴다. 이 소설은 이런 해주의 행동에 반전이 있기에 꼭 끝까지 읽어봐야 한다. 그러나 책의 메시지는 명료하다. ‘사랑은 무엇인가?' 분명한건 그것이 소유 또는 집착은 아니라는 것을 책은 보여준다.



사랑을 고민하게 하는 또다른 영화 한편도 소개한다. 2024년 개봉한 It ends with us( 우리가 끝이야).

최근 할리우드를 시끄럽게 했던 블레이크 라이블리와 저스틴 밸도니가 주연을 한 영화이다.

어머니에게 폭력을 쓰던 아버지의 장례식을 다녀온 날, 릴리는 라일을 만났다. 아슬아슬한 옥상 위에서 그 밤, 서로에게 매력을 느끼고 우연히 다시 만난 둘은 빠르게 사랑에 빠진다. 다정하고 항상 자신을 웃게 하는 라일, 깊은 신뢰를 쌓아가며 그 둘은 결혼을 약속한다. 그러나 그 사이 몇 가지 사건이 발생한다. 그건 사고였다. 뜨거운 오븐에서 손을 떼던 라일의 손에 릴리가 다쳤고, 다툼 후 계단을 내려가며 실랑이를 하던 중 릴리가 계단에서 떨어져 이마를 다친다. 일상적으로 있을 수 있는 사고. 그런 사고들이 쌓이던 중, 릴리의 지옥 같던 유년시절 서로에게 의지가 되어 주던 첫사랑의 존재를 알게 된 라일은 릴리에게 공격성을 드러낸다.

이 영화에서 핵심은 라일의 아이를 가진 릴리의 출산 직후의 장면이다. 아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릴리와 라일, 아이 세 명이 함께 서 있는 모습에서 나는 셋이 다시 함께 하는 행복한 장면을 꿈꿨다. 그 안정감을 바랐다. 그러나 릴리는 라일에게 말한다.

“헤어져줘.”

그 평화로운 풍경을 깨는 한마디.

“딸에게 뭐라고 말할 거야? 사랑하는 사람이 자길 아프게 한다면? 뭐라고 말해줄 거야?”

이 소중하고 예쁜 딸이 단 한 번이라도, 실수로라도, 누군가에게 맞았고 그 사람이 다신 안 그러겠다고 말한다면, 그를 용서하고 다시 만나도록 할 것인가 묻는 그 말.

라일은 그 말에 뒤돌아선다. 그렇게 그들은 진짜 끝이 난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에서 수많은 용서를 본다, '이번은 다르겠지, 이 사람도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니까, 나라도 그의 곁에 있어야 해, 그가 불쌍해, 그도 변했어' 라며 폭력을 다시 과거의 일로 묻어버린다. 그때 했던 과거의 사랑도 진짜니까. 그 순간의 사랑하는 마음을 부정할 수 없어서 끊어내지 못한다. 그러나, 멈춰야 한다. 끝을 내야 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이뤄지는 폭력의 끝을. 그것이 단호해야 한다. 사랑은 영원한 소유 또는 집착이 아니다.


나는 더 이상 외롭게 느껴지지 않던 시기에 현재의 남편, 곰을 만났다. 혼자 노는 일이 재미있던 시기, 나 자신이 꽤 마음에 들던 즈음이었다. 그랬기에 나는 꽤나 성숙하게 곰과 연애를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가스라이팅에 해당하는 말들, 관계에 있어 우위에 서고 싶어 하는 말들도 서로 해본 적이 있으며. 끊임없이 의견 차이를 보이며 싸우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곰에게 배운 사랑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곰은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꿈을 응원한다는 것, 그리고 내가 자신에 맞춰 변하길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랑과 집착, 사랑과 소유는 한 끗 차이라고 느낄 때가 있다. 사랑의 전제는 나와 상대에 대한 존중이다. 나를 존중해주지 않는 누군가의 말과 행동이 위험한 만큼 상대를 평가하며 변화하라고 요구하는 나의 말과 행동도 위험하다.


무 자르듯 깔끔한 관계는 없고 관계에서의 1+1=2 같은 정답도 없다. 그러나 나는 모두가 관계에서 안전하길 바란다. 특히 사랑이라는 소중한 감정에 있어서는 더더욱. 나는 여전히 사랑에 대해 삶 속에서 어렴풋하게 배워가고 있다. 모두가 매 순간 나도 상대에게, 상대도 나에게 소중한 사람으로서 존재하게 하는 안전한 사랑을 하길 바란다. 혹시나 그렇지 않다면, 단호한 끝을 맺을 수도 있기를 응원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리뷰의 함정, 혼란스러운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