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플 스테이, 명상의 깨달음
나이가 들어갈수록 지혜로워지고 마음은 평온해지길 바랐다. 그러나 나이 마흔에 들어선 올해,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한껏 요동치고 있다. 교사 생활은 점차 지쳐가고 매일의 일상은 무기력해졌다. 다가올 미래에 대해 답도 없이 그저 불안한 현재. 그러다 보니 작은 일에도 쉽게 화를 내거나 눈물이 났다.
그러다 우연히 춘천에 제따와나 선원을 알게 되어 여름휴가로 템플 스테이를 다녀왔다. 제따와나 선원은 산이 품고 있는 우리나라의 일반 절과는 다른, 벽돌로 지어진 건축물이다. 인도의 기원정사를 본떠 만든 공간이라 했고, 수행을 위한 공간이라는 점이 특별해 보였다. 절의 중요 일과인 예불, 울력, 공양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에는 대부분 명상(수행)이 진행된다. 수행은 좌선 수행, 경행 수행, 그리고 반조의 시간으로 이루어지는데 간단히 공유하자면 이러하다.
좌선 수행이라는 건, 호흡에 집중하며 떠오르는 생각이 ‘탐욕’인지 ‘성냄’인지를 파악하는 수행이다. 멍해지고 졸음이 쏟아지는 무기력함, 게으름을 ‘해태 혼침’이라 하는데 이것 또한 경계해야 한다.
경행 수행은 발걸음에 집중하며 위와 동일하게 떠오르는 생각을 알아차리는 걷기 수행이다.
마지막으로 반조는 떠올랐던 생각과 그것이 버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종이에 적으며 성찰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부끄럽게도 나는 몸을 가만히 두지 못하고, 입 벌리고 졸기도 하고, 언제 끝나나 스님 손끝만 보며 실눈을 뜨는 불량 수행자였다. 내가 이렇게까지 집중을 못하는구나 한탄하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짧은 집중 시간에 불쑥 찾아오는 생각들을 ‘탐욕, 성냄, 해태 혼침’으로 나누어 알아차리려 노력했다.
‘잘 해내고 싶다’ ‘잘했다고 인정받고 싶다’라는 생각이 먼저였다. 그건 탐욕이었다.
‘남들은 저렇게 잘하는데 난 왜 안되나’ 생각도 들었다. 주변도 눈에 들어왔다. ‘화려한 티셔츠가 거슬리네’ ‘왜 줄 맞춰 가지 않지?’ 같은 생각들. 내가 세운 기준을 타인뿐만 아니라 나에게 적용하며 그에 어긋나면 불편해졌다. 그건 성냄이었다.
이 생각들 사이사이에는 끊임없이 멍해지거나 졸았다. 그건 해태 혼침이었다.
그때 문득 떠올랐다. ‘바름을 강요함’
교직 생활 초창기만 하더라도, 학교에서는 교원능력개발평가를 했다. 학부모나 학생들로부터 평가받으며 한 번씩 상처받은 경험을 가지고 있었던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듣고 두려움에 떨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들어본 가장 부정적인 평가는 ‘바름을 강요함’이었다. 처음에는 당황했으나 나중에는 은근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내가 비록 완벽한 바른 삶을 살지는 못할지라도, 나는 아이들에게 바르게 살라고 가르치고 있구나. 그건 바람직한 것 아닌가.
그런데 명상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바름을 강요’하는 나의 태도가 나를 괴롭게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기준 세워둔 ‘바름’이 있고 그 ‘바름’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은 나 자신이나 타인의 행동을 보면 불편해진다. 수시로 나 자신과 타인의 말 또는 행동을 평가했다. 그게 최근 나의 무기력함이나 감정 상태와 관련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람들과 갈등하는 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간혹 내가 누구와 갈등이 있었다고 말하면, 주변에서 “네가?”라고 말할 정도로 좋은 게 좋은 거다 식으로 넘어가는 편이다. 그런데 내가 현재 갈등을 겪고 있는 몇몇 관계를 떠올리면 공통점이 있다.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서 양해도 제대로 구하지 않는 경우,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말투나 행동을 하는 경우, 그런 유사한 경우에 나는 화가 나고 그게 개선될 여지가 없다면 그 사람과 관계를 개선하지 못하고 포기해버린다. 그 상대는 내게 말했다. “당신이 너무 타이트한 거야.” 그 말이 더 화가 났다. 사람 간의 관계에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자고 말하는 내가 왜 잘못된 거지?
그러나 이번 템플 스테이를 다녀오고 깨달았다. 나는 최근 괴로웠다. 그건 내 안에 있는 탐욕과 성냄 때문이다. 그 탐욕과 성냄은 내가 세워놓은 ‘바름’의 기준에 대한 집착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에 집착하며 나 자신에게 또는 타인에게 화가 났다. 그 기준에 항상 완벽히 부합하며 살아가지 못하는 나에 대한 실망과 그 기준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느 사람들에 대한 실망은 내 '바름'의 기준에서 시작되었다.
그렇다고 내가 살아온 가치관을 포기하자는 것은 아니다. ‘바름’의 기준을 세우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지만 그것에 집착하지는 말자 생각한다. 교원능력개발평가에서도 얘기하듯이 '바름'을 세우고 이를 말할 수 있으나 그것을 집착하거나 강요하면 안되는 것이었다. 명상을 통해 앞으로 살아갈 시간이 편안해졌으면 좋겠다.
(추가로) 이번에 경험한 제따와나 선원과 관련하여 정보 세 가지, 좋았단 점 세 가지를 공유한다.
많은 사람들이 불교에 관심을 갖는다고 하더니 20명 가까운 사람들이 수행에 참여했다. 특히 20대들이 많아 보인다는 점이 놀라웠다. 언뜻 듣기에는 이런 과정을 찾아다니는 마니아 층도 있는 것 같다. 유튜브에 선원장 스님이신 일묵 스님의 강연도 많이 듣는 것 같다.
절밥은 항상 옳다. 내가 이렇게 채소를 좋아했나 싶을 정도로 각양각색의 반찬들의 향연이다. 절제해야 했지만 항상 배부르게 가득 먹었다. 탐욕. 탐욕. 탐욕. 그러나 저녁은 불식이다. 나는 못 참고 챙겨간 간식을 먹어버렸지만.
숙소는 1인, 2인, 혹은 다중방 사용을 하게 된다. 나는 4인 1실의 다중방을 사용했는데 묵언을 하고 있고 사람들이 다들 조심스럽게 행동하기에 사실 크게 방해받지 않는다. 에어컨과 제습기가 항상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생각보다 쾌적하게 생활했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점 세 가지!
지대방의 시간
지대방이라는 공간에는 누구나 마실 수 있는 차와 읽을 책들이 마련되어 있다. 스님의 설법을 듣거나 인터뷰를 하고 난 후 생긴 의문들이 책을 읽다 보면 해결이 됐다. 쉬는 시간마다 책을 읽는 그 시간이 참 좋았다.
야간 경행
첫째 날 밤에는 생각보다 날이 뜨겁지 않아 야간 경행을 했다. 경사로를 따라 지그재그로 걸어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온다. 어둡고 고요하기 때문에 걸음에 더 집중할 수 있어 좋았다.
잡초 뽑기 울력 시간
잡초는 그 뿌리까지 아주 깊이 박혀 있어 힘을 잔뜩 주고 끌어올려야 한다. 그 생명력에 감탄하면서도 잡초 뽑기가 끝낸 이후에는 묘한 후련함도 있었다. 땀을 흘리면서도 아무 생각 없이 손 끝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고요한 공간에서, 나에 집중하는 진짜 휴식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제따와나 선원의 초심자수행과정를 권하고 싶다. 마음이 복잡할 때, 핸드폰을 내려놓고 나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은 반드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