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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Oct 31. 2020

카레와 모순

나를 더 나답게 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모순적인 사람이다. 


모순 : 창과 방패라는 뜻으로, 말이나 행동의 앞뒤가 서로 맞지 않음. 


답답한 건 못 참지만 빨리빨리 급하게 일하는 건 싫어한다. 

욕심도 많지만 포기도 곧잘 한다.  

원칙을 지키는 것을 좋아하지만 틀에 박힌 것은 싫어한다. 

완벽을 추구하지만 덜렁댄다. 

관심받는 걸 은근히 좋아하지만 먼저 나서지는 않는다. 


그래서 내 마음은 늘 나 자신과 싸우는 중이다. 괴롭다. 


심리테스트나 적성검사를 할 때 생각하지 말고 번호를 찍으라고 하는데 헷갈려서 고민하게 되는 항목들이 있다. 당연히 테스트를 끝내는 속도는 거의 꼴찌다. 어떨 땐 그런 것 같고, 또 어떨 때는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나를 일관된 하나의 표현으로 정의할 수 있단 말인가. 


나처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스스로 고민이 될 것 같은 음식이 있다. 인도 음식이지만 영국 음식인 커리다. 


커리의 기원은 인도에서 시작되었지만 지금처럼 대중화될 수 있게 커리를 상품화한 건 영국이다. 인도에는 '커리 파우더'가 없고, 집집마다 입맛에 맞게 섞어 만드는 배합 향신료를 '마살라'라고 부른다. 커리는 향신료를 넣고 끓여 만든 음식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었다. 


영국이 인도를 통치하던 시절, 동인도 회사를 통해 영국에 소개된 향신료에 밀가루와 버터로 만든 루를 넣고 걸쭉하게 만들면서 우리가 지금 먹는 커리가 된 것이다. 이 커리를 집에서 편하게 먹을 수 있게 최초의 가정용 '커리 파우더'를 만든 게 바로 영국 식품 회사 C&B였다. 


소를 신성시하던 인도에서는 채소 위주의 재료를 넣던 것과 달리 영국에서는 소고기를 넣었으니 인도의 커리와 영국의 커리는 전혀 다른 음식이라고 봐도 될 것 같다. 


이름 때문에 당연히 인도 음식일거라 생각하는 치킨 티카 마살라도 의견은 분분하지만 영국의 인도 식당에서 개발한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인도 음식인 치킨 티카(구운 닭고기)를 더 촉촉하게 즐기기 위해 토마토 퓨레와 크림 등을 더해 커리로 만든 거다. 


일본은 영국식 커리를 재해석해 돈가스, 소시지 등 다양한 토핑을 올렸고, 한국은 강황 가루를 많이 넣고, 향신료 맛은 줄여 김치와 먹어도 어울리는 황금빛 카레를 만들었다. 각자의 스타일을 살려 전통 음식보다도 현대 가정에서 더 많이 사랑받고 자주 식탁에 오르는 음식이 되었으니 카레는 일본 음식이라고도, 한국 음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쯤 되면 이 음식을 커리라고 불러야 할지, 카레라고 불러야 할지도 헷갈릴 지경이다. 다소 혼란스럽고 모순적인 카레의 세계를 되짚어 보고 나니 드는 생각, '커리인지, 카레인지, 인도 음식인지 영국 음식인지가 그렇게 중요한가?' 


사람들은 무언가에 대해 정의하고 구분하기를 참 좋아한다. '다름'에서 오는 차이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다름'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아닐까 싶다. 타인의 MBTI를 궁금해하고, 알고 나면 앞으로의 관계에 닥칠 일들이 미리 예상되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해지는 것과 비슷하달까.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타인이란 완벽히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라서 그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가는 경우가 많다. 그 옛날 인도 사람들은 자신들의 마살라가 영국의 커리로, 일본의 카레로, 한국의 오뚜기 카레로까지 이어지며 전혀 다른 형태의 음식으로 변모하게 될 거라고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그래도 무언가를 정의해보려는 노력이 헛된 것만은 아니다. 여러 가지로 정의해봐야 진정한 정체성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원칙대로 하는 걸 좋아하는 고집스러운 나도 '나'고, 누가 시키는 그대로 하는 걸 싫어하는 청개구리 같은 나도 '나'다. 푹 익은 감자, 당근, 소고기가 듬뿍 들어있고 배추김치를 올려 먹는 달큼한 카레도, 묽고 향신료의 다채로운 향과 요거트의 산미가 느껴져서 밥보다 난과 잘 어울리는 매콤한 커리도 모두 '카레'다. 


정의는 여러 가지일 수 있다. 하지만 정체성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여러 가지 정의를 내려 볼수록 정체성은 더욱 또렷해진다. 그러니 '나'에 대해 아직 정확히 잘 모르겠다고 해서 머리 싸매고 고민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순간과 경험들이 고맙게도 나를 계속 정의할 기회를 줄테니까.


내가 해야 할 일은 매 순간의 내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면밀히 살펴보고 기억해 놓는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나를 더 알수록, 나와 더 친해질수록 나다워질 수 있다. 


여기서 카레에 대한 TMI 하나. 카레는 어제 끓여서 하룻밤을 재운 것이 맛있다. 심지어 만화 심야식당에서는 따끈한 밥에 '어제의 카레'를 차가운 상태로 얹어 먹는다. 뜨거운 소스 안에 뭉뚱그려져 있던 카레의 인상이 하루를 묵으면서, 차갑게 식으면서 더 선명해진다. 


오늘 당장은 잘 모르고 지나칠 수 있다. '어제'가 되면 더 또렷해지는 것들이 있다. 내가 나를 자꾸 돌아보고 곱씹어보는 건 절대 뒤끝이 있어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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