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 멍한 하루를 마치며

멍한 시간도 나의 일부라는 깨달음

by 소소연

커피를 끊은 지 사흘째.
오늘 하루는 유난히 멍했다.
해야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머릿속은 흐린 안개에 싸인 듯 또렷하지 않았다.


책상 앞에 앉아도 글이 잘 써지지 않았고,
사소한 메모 하나에도 한참을 망설였다.
커피 한 잔이면 금세 또렷해졌을 텐데,
그 한 모금이 없는 지금은
생각이 시작되기도 전에 자꾸 흩어졌다.


사흘 만에야 깨닫는다.
나는 그동안 커피로 집중을 산 게 아니라
멍한 시간을 억눌러온 것이었다.
멍하다는 건 게으름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잠시 쉬고 싶다는 신호였을지도 모른다.


저녁 무렵, 창밖을 바라보다가
스스로에게 작은 질문을 던졌다.
“오늘은 무엇을 해냈는가?”
대단한 성취는 없었지만,
멍한 하루를 버텼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나 자신을 다독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멍한 순간이 꼭 쓸모없지만은 않다는 것을.
커피가 가려왔던 그 공백 속에서
나는 오히려 오래 미뤄둔 내 마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아마도 그 목소리를 듣는 연습이,
커피 없는 삶이 내게 건네는 첫 선물일지도 모른다.


커피 없는 사흘째 밤,
아직은 불안하고 낯설지만
이 멍함 속에서 새로운 리듬을 찾아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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