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감정이 선명하게 들릴 때
술을 끊고 나서,
이상하게 감정이 더 자주 요동친다.
예전엔 그냥 넘어가던 말이 마음에 걸리고,
흘려보내던 장면이 오래 남는다.
아마 맥주가 그 사이를 부드럽게 덮어주던 거겠지.
지금은 그 필터가 사라진 느낌이다.
오늘은 괜히 더 날이 선 느낌이다.
출근길에 들은 한마디,
퇴근 후의 조용한 집,
그리고 생각보다 너무 또렷한 머리.
모든 게 불편할 만큼 생생했다.
잠시 눈을 감았다가,
오래전 어느 토요일 아침이 떠올랐다.
햇살이 거실 시스루 커튼 사이로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냉장고로 다가가서 캔맥주를 꺼내
아무 생각 없이 땄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거품이 올랐다.
아침 공기 속에서 맥주 거품이
햇살을 받아 반짝이던 장면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때 문득 웃음이 났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마음이 너무 외롭고 쓸쓸해서
나도 모르게 마시고 있었어'
아침 햇살 아래 맥주를 마시던 나는
스스로에게 조금 미안했다.
그날 이후,
나는 집에서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집에 맥주를 사 두는 일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맑은 기분이 돌아오자
예전 일들이 생각나면서 오히려 불편했다.
마치 속이 너무 투명해서
감정 하나하나가 다 드러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 불편함이야말로 내가 술로 덮어왔던 감정이었다.
맑음은 언제나 약간의 통증을 동반한다.
그래서 오늘은 그냥 이 맑음을 견뎌보기로 했다.
마시지 않고 버티는 게 아니라,
이 감정을 끝까지 느껴보는 연습.
불편한 맑음 속에서도
마음 어딘가에서 작은 위로가 피어났다.
이건 아마도 진짜 회복의 시작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