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 빠지자 마음이 먼저 열렸다
금주를 하면서
가장 낯설었던 변화는
대화의 온도였다.
나는 그동안
‘취기가 있어야 진짜 속마음이 나온다’
그렇게 믿고 살아왔다.
"노래도 '취중진담'이 진짜지"라고 생각해 왔고,
밴드의 노래 중에는 "만취찬가"가 있을 정도였다.
고백도, 진심도, 위로도
잔을 몇 번 기울인 뒤에야
비로소 조심스럽게 꺼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술을 중지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건 내가 아니라
취기가 말하게 하던 것이었다.
어느 날 저녁, 오랜 친구와 통화를 했다.
예전 같으면
“이따가 맥주 한 잔 할래?”
라는 말이 먼저 나왔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그저 누워 있다가
갑자기 친구 얼굴이 떠올라
아무런 계획 없이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참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술 없이도
말이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서로 요즘 어떤 마음인지,
어디에서 힘들었는지,
무엇이 달라지고 있는지.
예전에는 취기에 기대야 흘러나오던 이야기들이
이제는 조용한 방 안에서
맑은 정신으로 흘러나왔다.
술이 빠지자
대화가 가벼워지는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진심에 가까워졌다.
우리 사이에 있었던 작은 감정들이
술김에 휘발되지 않고
그대로 머물러 대화를 이루었다.
나는 그 사실이
조금 낯설면서도
이상하게 따뜻했다.
취기가 사라지자
마음이 먼저 움직였다.
술 없이도
관계가 더 깊어질 수 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