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위험한 자리에서 마주한 가장 단단한 나
12월 5일, 토요일.
1년에 두 번 있는 ‘드러머 모임’ 날이었다.
우리 클럽엔 총 14개의 취미 밴드가 있다.
그중 드러머만 모으면
말 그대로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다.
음악 얘기, 장비 얘기, 공연 얘기, 인생 얘기…
앉자마자 1차, 2차, 3차 자동으로 새벽까지 이어지는 자리.
그리고 무엇보다도
술을 터지도록 마시는 모임이었다.
작년 12월에는
1차는 족발에 소주와 맥주를 마시고,
2차는 중국집에서 고량주를 마시고,
3차는 치킨에 생맥주를 마시면서 만취했었다.
생각만 해도 속이 아득해지는 풍경.
그래서 금주 중인 지금,
이 자리가 조금 두려웠다.
“오늘은 어떡하지?”
모임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혼자 중얼거렸다.
하지만 결정은 이미 내려져 있었다.
‘술은 안 마신다.’
도착하자마자
테이블에 소주와 맥주가 줄줄이 올라왔다.
누군가 큰 소리로 말했다.
“자! 마시자, 한 잔 받아야지!”
예전의 나였다면
이미 반응도 안 하고 잔을 집어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의 나는
자연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나 오늘은 물 마실게.”
한 명이 놀란 듯 말했다.
“헐… 누나? 진짜? 한우가 있는데?”
나는 그 말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투명한 물컵을 들고
건배 소리 속에 조용히 섞였다.
처음 10분은 어색했다.
술 없는 드러머는
마치 드럼 없는 밴드 같았으니까.
하지만 그 어색함은 곧 사라졌다.
누군가 요즘 고민을 털어놓았고,
누군가는 공연 이야기를 시작했고,
누군가는 새로 산 스틱을 자랑했다.
나는 술 없이도
그 흐름 속에서 충분히 웃고 있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대화가 흐려지지 않는다는 것.
취기가 오르면
농담과 진심이 뒤섞여
마지막에는 기억도 흐릿해지곤 했다.
그런데 오늘은
누구의 말도 놓치지 않았다.
웃을 땐 완전히 웃고,
들어줄 땐 온전히 들어줄 수 있었다.
밤 11시쯤,
술이 잔뜩 올라온 친구들이
2차가 끝나 갈 때쯤
나는 슬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먼저 갈게!”
예전 같았으면
이 시간에 진짜 시작이었다.
세 번째 장소로 이동하고,
술의 강도도 세져가는 시간.
하지만 오늘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더 끌렸다.
겨울밤공기는 차가웠고,
머리는 놀랍도록 맑았다.
이렇게 똑바로 걷는 토요일은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
집에 도착해 옷을 벗고 누우니
몸이 편안히 내려앉았다.
비틀거리지 않고
심장이 빨리 뛰지도 않고
속이 쓰리지도 않았다.
그냥 고요.
그리고 그 고요가
이 토요일의 가장 큰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