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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 바다 Oct 20. 2020

아버지의 자랑거리

아버지의 자랑거리


17년 전, 그날 이후 나는 아버지의 자랑거리가 됐다. 배 내리고 일 년 넘게 백수로 지내던 나는 기자와 선생님이 된 사촌 형제들과 비교 대상이었다. 큰아버지와 고모들은 모이기만 하면 내 걱정부터 했다. 나만큼 속이 타들어 간 건 아버지였다. 스물일곱이 다 돼 가는 장남이 뚜렷한 계획도 없이 허송세월하고 있으니 오죽했겠는가! 아버지는 나를 부르더니 몇 년이라도 괜찮으니 공무원 준비를 하라고 했다. 그리고 몇 달 후 그 아들은 공무원이 돼서 나타났다.

아버지는 나를 걱정하던 분들에게 전화부터 돌렸다. 마을 회관에는 맥주와 안줏거리로 합격 턱을 냈다. 누군가 아들은 뭐 하냐고 물으면 아버지의 목소리에는 힘과 흥이 넘쳤다. 직업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는 건 큰 행복이었다. 친구들은 나를 부러워했다. 나는 당당해졌다. 자존감도 넘쳤다.

첫 발령지는 목포였다. 12월 29일, 바람은 불지 않고 오히려 포근했다. 버스에서 내려 삼학도를 걸었다. 비린내와 섞인 바다 내음이 풍겼다. 주황색 페인트가 바랜 4층 건물이 보였다. 정문에 서 있는 의경을 보니 경찰서라는 게 실감 났다. 경무과에 들러 내가 근무할 데를 안내받았다. 해양오염 관리 업무를 전담하는 과였다. 경찰서에서 유일하게 일반직만 근무하는 곳이기도 했다.

사실 여기를 목표로 공부한 건 아니었다.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어서 응시부터 했는데, 덜컥 합격해 버렸다. 배를 타면서 받았던 해양 오염 점검은 매번 걱정거리였다. 그게 내가 해야 할 일이란 것도 시험 준비하면서 알게 됐다. 내 성격상 경찰은 어울리지도 않았고, 점검 다니면 폼도 날 것 같아 잘 됐다 싶었다. 실제로 업체나 선박에 들어가면 대우가 달랐다.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다.

2개월쯤 지나 회사 내 대학 동문 모임에 갔다. 얼큰하게 술기운이 돌 무렵 옆에 앉은 선배는 왜 일반직으로 들어왔냐고 물었다. 의도는 뻔했다. 다수가 경찰인 조직이어서 일반직이 차별과 무시를 받는다는 얘기를 몇 달 동안 귀에 박히게 들었기 때문이다. 일반직 떨어졌으면 경찰 시험 봤을 거라는 말이 입 안에서 맴돌았지만, 결국 얼버무리고 말았다. 그런 질문을 서너 번은 더 들었다. 처음에는 기분이 나빴지만, 나중에는 그러려니 했다. 어쩌면 이런 배려 없는 질문에서부터 과 선배들의 피해 의식은 싹텄는지 모르겠다.

예전에는 경찰이 우월하다는 비뚤어진 사고에 빠진 직원들이 있었다. 노골적으로 일반직을 비하하거나 무시했다. 과 이름도 '오염과'로 일부러 줄여 부르는 것 같았다. 협조 결재를 받으러 가면 이것저것 사소한 것으로 시비를 걸었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서장을 하지 못하는 신분적 한계도 약점이 됐다. 그런 인간들은 일반직뿐만 아니라 경찰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요즘 대부분의 직원들은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며 일한다. 시스템도 많이 개선돼서 오히려 소수여서 상을 받거나 할 때 혜택을 보기도 한다. 하지만 많은 일반직 직원들은 아직까지 차별은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을 명확히 설명하진 못한다. 어쩌면 일만 명이 넘는 다수 경찰관들 사이에 끼어 천 명 남짓 소수 신분으로 근무하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지도 모른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신분이 달라서 생기는 급여 차이에서부터 행사 때마다 제복 입은 경찰관들에 밀려 뒷자리 앉는 것, 사복을 입고 거수경례하는 사소한 일조차 차별로 느끼기도 한다.

나는 가끔 후배들에게 왜 일반직으로 들어왔냐고 물어 본다. 나도 입사 초기에 갈등을 많이 해서다. 그들은 방대한 꿈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나처럼 현실적인 이유를 대기도 한다. 나는 바다 환경을 보전하는 일은 우리 세대뿐만 아니라 미래와 인류를 위해서도 필요한 중요하다고 말한다. 조직에 자부심을 느끼고 차이를 인정해야 차별받지 않고 피해 의식을 이겨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조직은 톱니바퀴와 같다. 어느 구성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다. 크기와 모양에 따라 잘 맞물려 돌아가야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려면 차별이라는 녹이 없어야 하고, 배려라는 윤활유가 필요하다. 내가 조직에서 꼭 있어야 할 존재라는 자존감은 그 동력이 된다.

이번 추석, 아버지와 함께 성묘를 다녀왔다. 할아버지의 묘비에는 손자들의 이름과 직업이 기록되어 있다. 비석을 만들 때 아버지는 내 직업을 환경공무원이라고 또박또박 흥이 나서 말했을 것이다. 나는 아버지의 자랑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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