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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 바다 Oct 29. 2020

아들의 사춘기


아내는 울고 있었다. 목소리는 떨렸고 격앙된 마음도 추스르지 못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사무실에서 받을 수 있는 전화가 아니었다.

그날(10. 19. 월요일)은 아들이 처음으로 가을 교복을 입는 날이었다. 아들은 넥타이가 안 보이자 짜증부터 냈다. 아내는 교복 안을 잘 찾아보라고 했다. 아들은 찾아봐도 없다며 큰방 문을 부술 기세였다. 자기 방 문은 더 세게 닫았다. 엄마가 큰소리를 내자 해서는 안 될 말까지 했다. 아내 말로는 때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 원흉은 결국 교복 주머니에 있었다. 아내는 이놈과 같이 못 사니 알아서 하라며 통화를 끊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멀리 떨어져 있는 게 다행이었다. 아들에게 전화했다. 짧은 사이 온갖 생각이 스쳤다. 아들은 받지 않았다. 오히려 연결되는 게 이상한 일일지도 모른다.

5분 뒤, 전화가 왔다. 아들도 울고 있었다. 엄마의 행동에 적잖이 놀란 것 같았다. 아들은 엄마를 때리는 걸 막기만 했다고 했다. 나는 목소리를 높일 수 없었다. 질풍노도의 시기에 함께하지 못 하는 것도 미안했을뿐더러 아들은 나를 실망시킨 적도 없어서였다. 나도 목이 메고 눈물이 고였다. 혼자 고생하는 엄마에게 잘하라고만 하고 빨리 전화를 끊었다. 나는 유난히 파란 하늘만 바라보았다.

온종일 머릿속이 복잡했다. 사춘기인 아들과 아내를 위해서 회사에서 운영하는 심리 상담 프로그램을 알려 줬다. 아내는 'ㅎㅎ 안 해도 돼. 다 해결됐어.'라고 답장을 보냈다. 자세히 물어보진 않았지만, 아들은 엄마에게 사과했을 것이다. 주원이는 그런 아들이다.

아들은 어려서 책을 좋아했다. 어떨 때는 방에 처박혀 한두 시간 나오질 않았다.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안경 쓴 이유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아들이 쓴 독후감과 일기는 놀라웠다. 가끔은 글솜씨가 부럽기까지 했다. 군더더기 없이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문장은 깔끔하면서도 담백했다. 참관수업에서 발표하면 학부모들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 크기만큼 내 어깨엔 힘이 들어갔다.

아들은 유머 감각도 뛰어났다. 어려서부터 마술을 좋아해서 책이나 유튜브를 보면 금방 따라 했다. 할아버지에게 배운 젓가락으로 콧구멍 뚫는 마술은 그중에서도 최고다. 아픈 표정까지 섞어서 하면 보는 사람 대부분 자지러진다. 나를 닮은 노래 실력 빼곤 춤, 성대모사도 잘해 수학여행에서 최고 인기였다고 한다.

나이에 맞지 않게 속도 넓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스마트폰이 없어 엄마 것으로 친구들과 채팅했다. 한번은 여러 명이 한 아이를 험담하고 있었다. 평소에 문제를 많이 일으켰던 것 같다. 아들은 그 친구를 우리가 더 신경 써 줘야 한다는 문자를 남겼다. 지금도 아들 친구들은 고민이 있으면 주원이에게 전화하곤 한다.

중학생이 된 아들은 책보다는 스마트폰을 끼고 산다. 동생에게 아무것도 아닌 일로 화를 내고 괴롭히기도 한다. 엄마에게 버릇없이 행동할 때도 많다. 가끔 화를 내려다가도 참고 만다. 아내만으로도 충분해서다. 또 다른 이유는 공부도 못하고, 책도 읽지 않았으며, 친구들에게 인기도 없고 돈도 허투루 쓰던 나보다는 훨씬 나아서다.

지난 금요일(10.23.)은 결혼기념일이었다. 저녁 늦게 아내가 조개찜을 먹고 싶다고 했다. 해산물을 싫어하는 아들도 군말 없이 따라나섰다. 아들은 조금 먹다가 젓가락을 놨다. 그리고는 축구 동영상을 봤다. 빨리 가자고 보채지는 않았다. 집 앞 치킨집까지도 따라왔다. 아들은 엄마에게 오늘 얼마 썼냐고 물었다. 그리고는 용돈을 모은 7만 원을 줬다. 그러면서 한마디 했다. '오늘은 내가 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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