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숙제를 마치면 내게 작은 선물을 한다. 시원한 맥주를 마시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는 사소한 것이지만 효과는 크다. 강원국 작가는 “글 쓰는 데 저항하는 뇌를 바꾸려면 적당한 보상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그도 글을 마치면 막걸리 한 사발씩 마신다고 한다. 주당들이 만들어 낸 핑계일지 모르겠지만, 격하게 고뇌하고 나서 마시는 술이 최고라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몇 주 전 ‘차별’이라는 글감을 받고서는 며칠이 지나서도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평소 느꼈던 것을 글로 풀어내려니 사소하거나 나만의 착각 같았다. 다행히 토요일(‘20. 10. 17.) 당직이었다. 먹고 자고 순찰하는 시간 빼고는 글 쓰는 데 몰입했다. 글은 엉덩이로 쓴다는 말처럼 시간이 지나니 한 문장씩 채워졌다. 저녁 무렵 초고가 완성됐다. 새벽 당직에 가다듬었더니 동틀 무렵에는 읽을 만 해졌다. 글쓰기 카페에 글을 올리고 상쾌한 공기를 마셨더니 피곤이 몰려왔다. 이제는 내 선물을 고를 시간이다. 힘들게 썼으니 특별한 걸 받고 싶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완화되면서 일부 관람이 허용된 야구장이 떠올랐다. 마침 일요일 두 시 경기가 있었다. 홈팀 에스케이가 못해서인지 표도 많았다. 평소에는 구하기 어려운 응원석 앞자리로 끊었다. 관사에서 눈을 붙이고 걸어서 문학구장에 갔다. 십 리쯤 떨어져 있어 운동 삼아 많이 갔었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휑한 경기장을 울타리 너머에서 바라만 봤는데, 마지막 주말 경기를 볼 생각하니 발걸음도 가벼웠다.
경기장 입구에서 앱으로 큐아르(QR) 코드를 찍고 체온을 측정했다. 내 자리는 응원석뿐만 아니라 경기장도 잘 보였다. 좌석은 사이사이가 비워졌다. 가족과 연인도 생이별해야 했다. 파란 가을 하늘과 초록색 잔디는 유난히 선명했다. 관중은 적었지만, 야구장의 열기는 그대로였다. 관중은 들떠 보였다. 선수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경기 전에 희귀 난치병을 앓는 어린이의 자선 행사를 마치고 두 어린이가 시구와 시타를 했다.
가슴으로 내는 함성과 함께 경기가 시작됐다. 1회 초부터 케이티의 화끈한 공격이 이뤄진다. 홈런까지 치며 3점이나 얻는다. 1회 말 에스케이의 반격과 함께 내 시련도 시작됐다. 응원석 앞에 앉으면 응원단에 따라 경기 내내 응원해야 하는 걸 간과했다. 관중도 적어 뺄 수도 없었다. 선수마다 다른 응원가와 함께 치어리더가 율동한다. 응원단장은 모두 함께하자고 독려한다. 나를 보며 하는 소리 같다. 몸치인 내가 따라 하긴 어려운 동작들이다. 처음만 창피했지 따라 해 보니 재밌다. 전광판에 내가 비친다. 나만 춤추는 방향이 다르다. 마스크를 썼으니 누가 알아보겠는가! 이 순간을 즐기면 된다.
5회가 끝나고 특별한 응원을 봤다. 희소병 때문에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지윤이의 공연이었다. 신해철의 <그대에게>에 맞춰 치어리딩했다. 손짓 발 짓 하나에 힘과 정성이 느껴졌다. 관중들은 기립해서 호응했다. 가슴은 뭉클했고 코끝은 찡했다. 감동은 최고뿐만 아니라 최선을 다해도 나오는 것이었다.
에스케이 팬도 아니면서 문학구장을 자주 찾는 이유 중 하나는 8회가 끝나면 울리는 <연안부두> 때문이다. “바람이 불면 파도가 울고 배 떠나면 나도 운단다.”를 관중들이 함께 부르면 가슴이 뛴다. 내 심장에는 아직 마도로스의 피가 흘러서일까! 코로나 때문에 비록 따라 부르진 못 했지만, 그 감정은 여전했다.
오늘 경기는 에스케이의 패배였다. 세 시간 가까이 흔들었더니 스트레스는 사라졌지만, 배가 고팠다. 가끔 가는 회전 초밥집을 찾았다. 출출해서인지 유난히 담백하고 쫄깃했다. 분위기를 살리고 싶어 맥주까지 시켰다. 내 옆자리에 60대 초반의 남자 두 명이 앉았다. 그리고는 소주를 시켰다. 한 명은 다음 주에 큰 병원에 가야 한다고 했다. 검진을 받았는데, 대장암이 의심되니 조직검사를 받으라고 했다는 것이다. 몇 달 전부터 몸이 좋지 않아 이상이 있을 거라 예상했다고 한다. 그는 잔을 비우며 차라리 홀가분하다고 했다. 모르는 사이지만 그가 걱정됐다. 나는 마지막 한 잔을 따랐다. 그리고 한 번에 비웠다. 인생의 즐거움은 가까운 데 있었다. 글쓰기를 마치고 내가 받은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