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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 바다 Nov 29. 2020

함께 하는 글쓰기

함께 하는 글쓰기

며칠 전, 특별한 책이 왔다. 내 글이 실린 <2020년 한식 문화 공모전> 작품집이었다. 아내는 고급스럽게 만들어진 책을 친구들과 가족에게 자랑했다. 초등학생 딸은 글을 읽더니, 할머니 육개장이 먹고 싶다며 내 흥을 돋웠다. 나는 유명 작가가 된 기분이었다.


올여름 글쓰기 사이트에 공모전 안내문이 올라 왔다. 읽고 나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를 위해 열리는 대회 같았다. 공교롭게도 글쓰기 반 글감도 음식이었다. 글 한 편을 쓰려면 여러 날 고민할 때가 많았다. 이 글은 달랐다. 4시간 만에 초고를 썼다. 무뚝뚝한 중학생 아들에게 보여 줬더니 잘 썼다며 살포시 웃었다. 퇴고를 거듭해서 글쓰기 카페에 올렸다. 학우들의 반응도 좋았다. 글쓰기 수업에서도 큰 지적이 없었다. 며칠 지나서 중학교 국어 선생님인 글벗이 연락해 왔다. 내 글을 교재로 쓰고 싶다는 것이다. 기대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결과 발표만 손꼽아 기다렸다. 그날 수상작에는 ‘어머니의 육개장’이 있었다. 수필 부분 장려상이었다. 욕심은 끝이 없어 살짝 아쉽기도 했다. 바로 마음을 다잡았다. 글을 써서 받은 첫 번째 상이자 큰 상이었기 때문이다. 1,500여 점이나 출품된 데서 받았다니 더 기뻤다. 작품집은 전국 도서관에 나눠 준다니 자랑스럽기도 했다.

글쓰기를 시작한 건 2년 전이었다. 회사 옆에 평생교육원이 있었다. 2월에 나온 교육 과정 안내 책자에 ‘일상의 글쓰기’가 유독 눈에 띄었다. 김영하 같은 작가들이 나오는 인문학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 때였다. 에세이 열풍도 불었다. 글쓰기를 배우면 회사 일하는 데 여러모로 좋을 것 같았다. 교수님 이름도 왠지 마음에 들었다.

수업은 매주 같은 글감으로 쓴 수강생의 글을 다듬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교수님의 첫인상은 빈틈없는 국어학자 그 자체였다. 수업 시간이 되면 학우들의 글을 손 본 인쇄물을 조용히 나눠 줬다. 매번 받아쓰기 점수를 받는 것처럼 두근거렸다. 띄어쓰기 하나까지 세심하게 지적했다. 가끔은 매몰차게 나무라기도 했다. 60 넘은 수강생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뜻만 통하고 읽을 수만 있으면 되지란 생각이 바뀌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다. 글을 잘 쓰려면 정성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래야 독자는 글을 읽는 내내 감동한다. 교수님의 수업을 들으며 느끼는 감정이기도 하다.

교수님은 이 년 가까이 수업하면서 한 번도 허투루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 저녁 7시에 시작하면 10시가 돼야 끝난다. 쉬는 시간이라곤 10분 남짓이다. 듣는 것도 힘든데, 가르치는 것이야 오죽하겠는가! 그런데 지치지도 않는다. 눈을 지그시 감고 문장 하나하나 또렷한 목소리로 고쳐 주는 걸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올해 초 나는 인천으로 발령났다. 교수님과 학우들에게 작별 인사는 했지만, 이별은 하지 못했다. 코로나 19 때문이다. 2월부터 빠르게 퍼져서 수업은 폐강될 뻔했다. 교수님의 글쓰기 사랑은 괴병도 막지 못했다. 수강생들에게 줌으로 영상 수업을 했다. 그 덕에 인천에서도 목포에서 하는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한 주도 빠지지 않고 쓰다 보니 글에 조금씩 힘이 생겼다. 예전보다 읽은 만한 글도 많이 나왔다.

2학기가 돼서는 고민이 됐다. 일이 바빠지는 데다가 매주 쓰는 것도 벅찼다. 그래도 다시 선택했다. 혼자 글 쓰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아서다. 힘들긴 하지만 내 글이 하나씩 늘어나는 재미가 크다. 영상 수업이라 딴짓할 때도 많지만 교수님의 목소리를 듣는 화요일이 기다려지는 건 한결같다. 열정적이고 수준 높은 학우들의 글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내가 글 쓰는 이유는 작가가 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일상을 글로 남기고 싶어서다. 사진과는 다르게 감정까지 담을 수 있는 게 글의 매력이다. 가족과의 추억, 회사에서의 일상과 같은 모든 것을 쓴다. 일기 같은 내용을 드러내야 하는지 고민할 때도 있다. 유려한 문장을 쓰는 글벗들을 보면 부러울 때도 있다. 교수님은 실력이 없으면 겉멋 부리지 말고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쓰라고 강조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을 읽다 보면 그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글쓰기가 지겨워지거나 힘이 들 때면 교수님이 소개해 준 한비야의 문장을 읽는다. “글쓰기는 철공을 갈아서 바늘로 만드는 과정이다. 지칠 정도로 너무나 더디지만, 애를 쓰는 만큼 반드시 좋아진다.” 혼자서 글을 쓰다 보면 웬만한 의지로는 버티기 힘들어서 쉽게 지치거나 포기하게 된다. 나는 훌륭한 글쓰기 스승에게 배우고 같이 쓰는 글벗들이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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