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인사
웃으며 떠났습니다. 며칠 혹은 몇 주일 후에는 다시 보게 되리라고 확신했습니다.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전염병이 퍼지며 도시가 봉쇄됐습니다. 가족과 애인들은 소식을 주고받을 수도 없이 헤어지고 맙니다. 알베르 카뮈 <<페스트>>의 한 장면입니다.
한참이나 뭉클했습니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입니다. 준비 없는 이별의 아픔을 어찌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럴 일이 없길 바라지만 내가 아무런 말 없이 떠난다면 이 글이 당신에게 조그마한 힘이 되면 좋겠습니다.
섭섭하면서도 홀가분할 겁니다.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것뿐입니다. 누구나 가야 하는 곳입니다. 내 삶은 행복했습니다. 후회라곤 없습니다. 다 가족 덕분입니다.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당신과 함께한 날들은 내 부족함을 채우는 시간이었습니다. 덤벙대는 나와 달리 당신은 모든 일이 완벽한 사람이었습니다. 친정은 물론 시댁의 작은 일까지 꼼꼼하게 챙겼습니다. 정읍 어머니는 딸들보다 당신에게 고민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 대부분 해결됐습니다. 목포 아버님이 사기를 당했을 때도 논리 정연하게 이야기해서 돈을 받아 냈습니다. 세심함은 물론 담대함까지 갖췄던 당신이 있어 삶이 평안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들을 볼 때면 당신에게 미안한 마음만 듭니다. 남들은 삼대가 덕을 쌓아야 주말부부를 한다고 합니다. 그 생활이 벌써 4년째입니다. 주원이가 14살이고 혜윤이가 11살이니 사 분의 일은 당신 혼자 키웠습니다. 건강하고 착하게 자랐고, 공부도 잘하는 아이들을 보면 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나는 아이들이 잘 커가는 것만 바란 방관자였습니다.
당신이 해준 쌉싸름한 커피도 못 마시고, 정갈한 음식도 못 먹는다고 생각하니 아쉽습니다. 제사는 지낼 필요 없습니다. 편한 시간을 잡아 가족이 모여 내 생각만 해줘도 만족합니다. 내키지 않는다면 당신 마음대로 하세요. 그게 제가 원하는 것입니다.
유산은 당신이 더 잘 알 것입니다. 숨겨둔 빚은 없습니다. 몰래 한 주식이 올라서 가정에 작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쁩니다.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정읍 집터만은 팔지 말아 주세요. 만에 하나 하늘나라가 있다면 그곳에서 바라보고 싶은 데입니다.
창백한 푸른 점, 지구 여행 잘 마치고 떠납니다. 시신은 화장해주세요. 원래 있던 것으로 돌아가려면 그게 쉽고 편합니다. 연명 치료는 필요 없습니다. 혹시 내 몸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내어주세요. 먼저 가서 미안합니다. 천천히 즐기다 오세요. 기다리지 않겠습니다. 다만 다시 만난다면 광활한 우주를 함께 여행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