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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 바다 Mar 20. 2021

일본 여행

일본 여행


2017. 11. 30. 나는 초등학교 4학년 아들과 여행을 떠났다. 무안 공항에는 우리가 탈 작은 비행기가 보였다. 정원이 60명인 전세기였다. 곳곳에 빈자리가 보였다. 그만큼 준비 시간도 짧았다. 예정 시간보다 빨리 떠난다는 기내 방송이 나왔다. 기체가 활주로로 천천히 움직였다. 출발선에 잠시 멈추더니 묵직한 엔진 소리를 냈다. 그리고는 온 힘을 다해 활주로를 달렸다. 순간 하늘로 솟구쳤다. 우리는 연신 창밖만 바라봤다. 여행은 언제나 설렌다. 이번에는 더 그랬다.

24년 전, 처음 일본에 갔다. 대학 3학년 승선 실습 때였다. 한 달 만에 처음 밟는 땅이었다. 나는 선원들과 상륙했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소도시였다. 시내로 나가려고 기차를 탔다. 창밖으로 부슬비가 내렸다. 숲에는 안개가 서려 있었다. 전통 가옥은 정겨웠다. 초록 나무에 매달린 유자는 유난히 샛노랗다. 평범한 것 같으면서 매력이 있었다. 모든 것이 한 폭의 그림, 아니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같았다. 가전 매장에는 사고 싶은 제품이 많았다. 쪼그만한 식당에서 우동을 먹었다. 땅이 그리운 선원의 마음을 달래주는 따뜻한 국물이었다. 그 당시에는 몰랐다. 그날이 계속 그리울 줄은 말이다. 세월이 지날수록 더 생각났다. 40대가 되면서 그곳에 가려고 몇 번을 계획했지만, 그것은 첫사랑을 찾는 것만큼이나 어려웠다.

한 시간 반도 안 돼서 돗토리 공항에 도착했다. 묵혀둔 숙제를 쉽게 끝마친 기분이었다. 그날처럼 보슬비가 내렸다. 아들과 나는 우산을 쓰고 여행 가방을 끌며 걸었다. 첫 자유 여행인 데다 일본어도 못 해서 살짝 걱정됐다. 다행히 기차역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구글 앱을 썼는데, 통역은 물론 길이나 음식점을 찾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됐다. 배 타면서 외국을 다녔던 감각도 살아 있는 듯했다.

돗토리는 일본에서 가장 작은 현이다. 소도시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첫날은 해안사구를 보러 갔다. 2만 원을 내면 3시간 동안 택시를 타고 관광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노년의 기사님은 이것저것 열심히 설명해줬다. 물론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일본인들의 친절은 여행하며 쉽게 느낄 수 있었다. 길을 물으면 어떻게든 알려 주려했다. 다른 도움을 요청해도 마찬가지였다.

둘째 날은 기차 여행을 했다.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파란 하늘이었다. 공기도 상쾌했다. 편의점의 커피는 전문점 못지않았다. 역에서 도시락을 사서 기차에 탔다. 출근하는 직장인들이 많았다. 두 시간 내내 정적이 흘렀다. 창밖으로 전통 가옥이 보였다. 울창한 숲 사이로 유자밭도 보였다. 24년 전 그곳으로 돌아온 듯했다. 다른 게 있다면 지금은 아들과 함께 있다는 것이다. 아들은 여행 내내 긴장했다고 했다. 여기서 아빠를 잃어버리면 국제 미아가 되기 때문이란다. 아들과 나는 손을 꼭 잡고 구석구석 돌아다녔다.

2박 3일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일본의 매력에 빠지기엔 충분했다. 몸만 담가도 부드러워지는 온천, 담백하며 고소한 초밥, 깨끗한 도시와 푸른 하늘 모든 게 맘에 들었다. 그날 이후 근 일 년 만에 세 번을 더 갔다. 가족과 함께 간 오사카, 시골 부모님을 모시고 간 후쿠오카, 아내와 장모님과 함께 간 벳푸까지 함께 간 사람도 장소도 다 달랐다. 공통점은 모든 여행이 만족스러웠다는 것이다. 회사 동료들은 일본에 숨겨둔 애인이 있냐고 농을 던졌다. '가끔은 일본 피가 섞였나'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일본 사랑은 생각보다 쉽게 마무리됐다. 2019년 강제노역 배상 판결로 한일 관계가 악화했기 때문이다. 자세한 내막은 아직도 잘 모른다. 많은 사람이 일본에 가지 못해 아쉬워한다. 일부 사람들은 일본을 추어올리며, 우리 정부와 국민을 욕하곤 한다. 난 그래도 우리나라 편을 들고 싶다. 부잣집, 좋은 집이 부러울 순 있어도 그게 우리 집은 아니기 때문이다.

코로나 19까지 퍼지면서, 일본 여행은 더 기약할 수 없게 됐다. 일본인들의 웃음과 아름다운 경치를 마음 편하게 볼 수 있는 날을 기다려본다. 그리고 한일 정치인들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창백한 푸른 점 지구에서 우리는 가장 가까운 이웃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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