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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 바다 Mar 27. 2021

우리 집

우리 집


여명 속에서 멀리 산등성이를 타고 선홍빛 태양이 떠오른다. 앞동산에는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산새들은 짝짓기를 하려는지 새벽부터 요란스럽다. 산 벚꽃이 질 때쯤, 밤이 깊어지면 소쩍새가 마음의 평안을 준다. 바람이 서늘해지면 그 역할은 풀벌레 차지다. 눈이라도 내리면 언덕은 동네 아이들의 썰매장이 된다. 아이들은 산길을 걸어서 학교에 간다. 손님들은 집에 들어서면 조망부터 말한다. 내 칭찬을 들은 것처럼 우쭐해진다.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 우리 집은 ‘푸르지오’다. 여기서 14년을 사는 이유 중 하나다.  

결혼 이야기가 오갈 무렵, ㅁ 시에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내가 배를 타고, 아내가 회사 다니며 번 돈을 모았다. 양가 부모님도 조금씩 도와줬다. 모두의 땀이 서려 있는 공간이다. 그래서 더 애틋하다. 집 없는 설움은 겪을 새도 없이, 새집에 들어갔다. 첫 아이가 태어난 지 6개월도 안 돼서였다. 그때만 해도 직장에서 집들이는 선택이 아니였다. 나도 직원들 성화를 이기지 못했다. 정읍 사는 부모님에게도 도와달라고 했다. 어머니는 육개장을 한 솥 끓여 오셨다. 아버지는 자랑하고 싶었는지, 시골 옆 동네 사는 먼 친척까지 모셔 왔다. 20명 가까운 동료와 가족들까지 30명쯤 모였다.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나는 부자가 된 듯했다. 아버지는 연신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눈물을 훔쳤다. 시골의 허름한 집에서 한평생 자녀들에게 희생만 하며 살아온 분이다. 자식 농사의 결실을 맛본 감격이었는지 모르겠다.  


아파트에서는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났다. 집사람은 붙임성이 좋아서인지 친구와 동생을 많이 사귀었다. 같은 동에 사는 인송이 엄마는 시골에 다녀오면 반찬을 매번 나눠 준다. 매콤하면서도 시원한 총각김치는 생각만 해도 침이 고인다. 아이들의 옷이나 신발이 작아지면 서로 물려 준다. 같이 살던 이웃 세 명과는 지금도 부부 모임을 한다. 우리는 같은 아파트에 산 인연으로 영원한 이웃사촌이 됐다.

 

나이를 속일 수 없는 것은 아파트도 마찬가지였다. 욕실 타일은 일어나고, 벽지는 색이 바랬다. 고쳐야 할 데도 많아졌다. 때를 놓치니 옮기기도 어렵다. 집을 내놔도 보려는 사람조차 없다. 새 아파트가 계속 들어서기 때문에 더 힘들어질 것 같다. 내년에는 어떻게든 이 집을 떠날 계획이다. 


몇 년 전, 나는 또 하나의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회사가 우여곡절 끝에 ㅅ 시로 내려가게 돼서다. 그곳은 아이들 교육 여건도 좋았다. 장기적으로는 그곳에 정착하려고 했다. 입주가 몇 달 남지 않았을 때 회사는 정치권의 결정에 따라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게 됐다. 당장은 팔리지도 않고, 살지도 못하는 집 두 채를 갖게 됐다. 

요즘 주변에서 부동산으로 돈을 벌었다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나도 새 아파트를 사면 가치가 오를 것이라 기대했다. 그 소원은 이뤄졌다. 그렇다고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자녀들이 어른이 돼서 집을 사려면 가격이 상승한 만큼의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집 사는 게 인생의 목표가 된다면 이 얼마나 우울한가! 


집을 팔아 부를 쌓는 것은 노동의 가치 훼손뿐만 아니라, 저출산이라는 사회 문제도 발생한다. 수도권에 주택 공급을 늘리는 것은 임시방편일 뿐이다. 좋은 일자리와 좋은 학교를 지방에도 많이 만들어야 한다. 경자유전(耕者有田, 농민만이 농지를 소유함)처럼 실거주자만이 집을 소유할 수 있도록 법률과 세금 체계를 더 강력히, 정교하게 개선해야 한다. 집은 투자하는 데가 아니라 삶을 가꾸어 나가는 곳이라는 국민 공감대도 만들어야 한다. 


누구나 조금만 고생하면 내 집을 살 수 있는 시대가 오기를 꿈꿔 본다. 집이 수도권과 지방, 부자와 빈자를 나누는 벽이 아니라 공동체가 살아가는 보금자리가 되면 좋겠다. 자연과 더불어 좋은 이웃과 함께 지냈던 ‘푸르지오’의 삶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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