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덕목
나이가 든다고 다 되는 건 아니었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바뀌면서 더 어려워졌다. 농사를 지으려면 연륜에서 나오는 경험과 지혜가 필요했다. 때와 날씨에 따라 하는 일이 달라져서다. 오래 살수록 아는 게 많았고, 그만큼 존경을 받았다. 요즘은 다르다. 대부분의 지식을 인터넷에서 얻는다. 어른이 사라지는 이유 중 하나 같다.
성인, 노인과는 다르게 어른은 타인에게 평가를 받아서 생기는 호칭이다. ‘어른스럽다’처럼 말이다. 나이를 먹는다고 누구나 될 수는 없다는 의미다. 자칫 잘못하면, “라떼는 말이야.”를 외치는 꼰대가 되기에 십상이다.
며칠 전, 유튜브에서 젊은 어른을 만났다. 서울에서 치킨집을 하는 31살 박 씨다. 그는 선행이 알려져 ‘돈쭐(돈과 혼쭐을 합친 신조어)’이 났다고 한다. 사연은 이랬다. 고등학생 ㄱ 군은 편찮은 할머니, 7살 어린 동생과 함께 살면서 택배 상하차를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하루는 닭이 먹고 싶다며 보채는 남동생을 달래려고 나왔지만, 5천 원밖에 없었다. 돈이 부족해 가는 집마다 거절당했다. 박 씨는 가게 앞에서 우물쭈물하는 형제를 보고 단번에 알아차렸다고 한다. 그리고는 2만 원어치 치킨을 그냥 내주었다. 그런 선행은 몇 차례 반복됐다.
ㄱ 군은 “처음 보는 저희 형제에게 따뜻한 치킨과 관심을 주신 사장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라며 “앞으로 성인이 돼서 돈을 많이 벌면, 저처럼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며 살 수 있는 사장님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편지를 써서 프렌차이즈 본사로 보냈다. 회사는 이 사연을 방송국에 알렸다.
박 씨는 “아직도 제가 특별한 일, 대단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제가 아닌 누구라도 그렇게 하셨을 거라 믿기에 더더욱 많은 분의 관심과 사랑이 부끄럽기만 하다.”고 했다. 그는 진정한 어른이었다.
우리 사회는 코로나 19 질병 확산과 함께 극단적으로 분리되고 있다. 지역, 종교, 성별, 정치, 세대 간 편을 나눠 혐오하고 증오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야 할 종교인, 정치인, 사회 지도층들은 오히려 갈등을 부추긴다. 맹목적인 아집에 사로잡혀, 자기주장만을 내세운다. 우리는 그들을 어른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제 어른의 덕목은 지식과 교양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향한 배려와 겸손이다. 긍정적인 힘으로 ㄱ 군과 같은 청소년이 올바르게 자라도록 도와주는 일도 해야 한다.
어른은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나는 내 길을 오롯이 확신하기에 이르는 불혹(40세)의 반을 넘어, 하늘의 명을 깨닫는다는 지천명(50세)으로 향하고 있다. 나이로는 중년이 됐고, 직장에서는 나름대로 역할을 한다. 그렇지만, 어른이라고 불려 본 기억이 없다. 이제라도 나잇값을 해야겠다. 어른이 아니라 노인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