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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 바다 May 23. 2021

해태 타이거즈

작년에 인천으로 발령이 나서 목포를 격주로 오가며 지내고 있다. 5년 전에도 2년을 살아서 연수로 따지면 4년째다. 집에 가지 않는 주말에는 가까운 데 여행도 가고, 책도 읽고, 게임도 하며 지낸다. 이제 막 결혼한 직장 후배는 이런 내가 가끔 부럽다고 한다. 아마 애까지 생기면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가족과 사는 게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것도 곧 느끼겠지만 말이다.


인천에 살면서 좋은 점 중 하나는 프로야구를 쉽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문학경기장이 관사에서 4km 거리에 있다. 코로나 19가 퍼지기 전만 해도 경기가 있는 주말이면 운동 삼아 그곳을 찾았다. 8회 초가 되면 표 없이도 경기를 볼 수 있었다. 승부가 거의 결정이 난 때도 있지만, 팽팽한 게 이어지기도 한다. 때로는 ‘9회 말 투 아웃’부터라는 야구 명언이 현실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팀 시합을 하면 1회 초부터 3루 쪽 원정 응원석에 자리를 잡는다. 스포츠 팀 중에서 최고로 좋아하는 기아 타이거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야구를 좋아했다. 야구를 좋아하게 된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경기 규칙도 제대로 몰랐다. 어린 마음에도 사는 곳을 연고로 하는 팀이 있어서 그냥 좋았다. 어쩌다 텔레비전 중계라도 있는 날이면 만화보다 야구를 보는 게 좋았다. 빨간색 상의와 검은색 바지의 경기복을 입은 선수들은 마치 마법사 같았다. 김봉연이 나오면 홈런을 칠 것 같았다. 선동열이 나오면 점수를 줄 것 같지 않았다. 이종범이 나오면 도루를 할 것 같았다. 모두 생각대로 됐다. 지고 있어도 질 것 같지 않았다. 그게 타이거즈의 매력이었다.


시골 친구들은 다 같은 팀을 좋아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도시에서 전학 왔던 한 친구는 타이거즈 유니폼을 교복처럼 입고 다니기도 했다. 야구 시합을 하는 것도 즐겼다. 고무 공 하나만 있으면 놀 수 있었기 때문이다. 벼를 베고 난 논이 경기장이었다. 고추를 지지하려고 박아 둔 막대는 방망이가 됐다. 공격할 때는 공을 세게 후려치고, 있는 힘을 다해 달렸다. 잘 쳐서 점수를 뽑으면 가슴이 벅차올랐다. 수비할 때 내 앞으로 공이 오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쉬운 걸 놓치면 개망신을 당해서다. 그런 일이 다반사였다. 다행히 아이들이 별로 없어서 후보로 교체되지도 않았다.


나는 목포에 있는 대학에 들어갔다. 졸업하면 배를 타야 하는 특성 때문에 4년간 전원 기숙사 생활을 했다. 한국시리즈를 하면 한 층에 하나씩 있는 텔레비전은 야구를 보려는 학생들 차지였다. 대학 2학년 때 역시나 타이거즈가 한국시리즈에 올랐다. 상대는 현대 유니콘스였다. 물론 대다수가 한 팀을 일방적으로 응원하고 있었다. 한 친구가 경기를 숨죽이며 보고 있었다. 현대가 역전하는 순간 함성을 질렀다. 그리고는 몇 분 안 지나서 선배에게 옥상으로 끌려갔다.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모르겠다. 그 이후부터 학교에서 야구 볼 때 누가 있는지 살피는 습관이 생겼다. 다른 지역 사투리 쓰는 선배들이 있으면 더 조심스러웠다.


1997년 우리나라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를 맞았다. 1999년 극심한 취업난이 시작됐지만, 우리 대학은 그 풍파가 미치지 않았다. 졸업생 대부분은 원하는 대형 상선 회사에 취업했다. 아쉽게도 해태 타이거즈는 그 파도를 넘지 못하고 2001년 해체됐다. 다행히 기아가 인수하긴 했지만 오랜 친구가 전학을 가고 새로운 친구가 온 것 같았다. 1982년 프로야구가 생기고 2001년까지 19년 동안 9차례나 우승한 자랑스러운 친구였다.


그 이후로 기아 타이거즈는 2009년 단 한 번 우승했다. 종이 호랑이가 됐다고 비아냥을 받기도 한다. 나도 예전만큼 야구를 잘 보지 않는다. 기아가 못해서인 게 가장 큰 이유다. 보고 있으면 속이 터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도 타이거즈가 인천에 올 날만 기다리고 있다. 코로나 19 때문에 목소리는 내지 못하지만 ‘비 내리는 호남선’을 마음으로 따라 부르고 싶다. 예전 호랑이의 용맹함을 다시 찾길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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