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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 바다 May 30. 2021

선생님이라고 불렀으면

선생님이라고 불렀으면
 
약 20년 전, 대학 삼 학년 때 승선 실습을 나갔다. 중동에서 기름을 실어 오는 유조선이었는데, 나는 기관실에서 일했다. 배는 군대만큼이나 위계질서가 강했다. 폭풍과 해적 같은 위험이 도사리는 바다에서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가려면 엄격한 규율이 필요했을 것이다. 1996년 태평양에서 선원 11명이 살해된 페스카마 15호 사건은 선상 반란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 예를 보여 준다.
 
선원은 사관과 부원으로 나눠진다. 장교와 부사관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사관은 부원 한 명과 짝을 이뤄 일한다. 초임 사관은 대부분 대학을 졸업하고 막 배를 타서 20대 초반이다. 배를 오래 탄 나이 많은 부원 중 일부는 실력과 경험이 부족한 초임 사관을 무시하려 한다. 초반에는 기 싸움이 팽팽하게 이뤄진다. 삼 기사는 배를 탄 지 1년밖에 안 됐지만 나름 실력을 인정받았다. 나를 동생처럼 챙겨주며 사소한 것부터 알려줬다. 부원은 "ㄱ 씨"처럼 이름 뒤에 "씨"를 붙여 부르면 된다고 했다. 실습생도 준사관이라는 배워서인지, 그러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다.
 
하루는 한밤중에 기계가 고장이 나서 비상이 걸렸다. 삼 기사는 내게 조기장(부원중의 가장 높은 직책)을 데려오라고 했다. 나는 “'남방'요!, 기관실로 내려오랍니다."라며 깊숙이 잠들어 있는 그를 깨웠다. 다행히 일은 금방 끝났다.

다음 날 조기장은 나를 방으로 불렀다. 주름살이 깊게 팬 그의 얼굴은 굳어있었다. 그리고는 "실습생이 싹수없이 '남방'이라고 부른다."라며 반 욕설을 섞어가며 나무랐다. 남방은 조기장(넘버 원 오일러)의 일본어식 투로 배에서는 통상 그렇게 불렀지만, 아들뻘 되는 실습생이 그러니 화가 났나 보다. 나는 부원들에게도 미운털이 박혔다. 그들의 뜻은 기관장에게 전달됐다. 기관장은 배를 타려면 항해 쪽 일도 배워야 한다며 잠시 그쪽에 가 있으라고 했다. 시간이 지나서 사관들의 요청으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그들의 감정은 온전히 풀리지 않았다. 나는 몇 달 후 휴가 가는 조기장에게 사과했다. 조기장은 실습 잘 마치고 돌아가라며, 악수를 권했지만, 앙금이 남아있는 표정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관이 돼 배를 탔다. 부원은 임금이 싼 필리핀 사람으로 바뀌고 있었다. 외국 선원과는 영어로 소통해서 호칭으로 문제 되는 일이 없었다. 물론 내가 데리고 있던 실습생도 마찬가지였다. 실습생은 두 명 있는 한국 부원에게 아저씨라고 불렀다. 어색하긴 했지만 내버려 뒀다. 마땅하게 부를 만한 존칭도 없었고, 조기장 일도 떠올랐기 때문이다. 부원은 야식을 만들면 실습생부터 챙겼고, 사소한 것이라도 가르쳐주려고 했다. 마치 아들처럼 대했다.
 
배에서 내리고 공무원이 됐다. 경찰이 많이 근무하는 조직 특성 때문에 배만큼이나 계급 체계가 확실했다. 몇 년 전만 해도 서장은 나이 많은 부하 직원에게도 반말하는 게 당연시됐다. 나도 말단 공무원으로 들어오다 보니 나이는 어리지만 계급이 높은 직원을 만난다. 한번은 나를 “ㅎ00씨”라고 불렀다. 물론 나보다 어린 직원이었다.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나는 걸 보면 무척이나 불쾌했다.
 
삼 년 전부터 배우는 글쓰기 반에는 스무 명 가까운 글 벗들이 있다. 우리는 서로를 선생님이라고 한다. 학교 선생님이 많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다 그렇게 부른다. 교수님도 선생님이라는 불러 주는 게 좋다고 한다. 몇 달 전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누구나 누구에게 선생님>이란 글을 읽었다. 그는 ‘선생(先生)이란 먼저 살아가는 사람이겠는데, 연장자라는 뜻으로 말고, ’내가 살아보지 못한 어떤 삶을 먼저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식당 종업원이나 경비원, 의사, 판사에게도 선생님이라고 부르자“라고 했다. 그러면 최소한 반말하거나 때릴 수는 없다면서 말이다.
 
나는 실습 때 있던 일을 되새기며 생활한다. 한참 어린 직원에게도 반말을 쓰지 않고, 상대방이 기분 좋은 존칭으로 부르려고 한다. 물론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지금도 조기장님에겐 미안한 감정이 남아있다. 다시 보긴 어렵겠지만 만나면 꼭 사과하고 싶다. “선생님, 그때는 제가 미안했습니다.”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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