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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 바다 Sep 25. 2021

글 쓰는 이유

올여름(6.22.), 15년 탄 아반떼를 팔았다. 차도 세월을 이기지는 못했다. 외판 곳곳에 녹이 슬고, 잔고장도 많아졌다. 연초에는 중고차 값만큼이나 많은 수리비가 들어갔다. 차 욕심이 없어서 일이 년 더 타려고 했지만, 주변 시선도 조금 신경 쓰였다. 가끔 다른 사람을 태울 때면 괜스레 멋쩍었다. 아내도 탈 만큼 탔으니 바꾸자고 했다. 차는 주문한 지 15일 만에 나왔다. 최신형 산타페였다. 목포에서 직장이 있는 인천까지 차를 몰았다. 350km나 되는 먼 거리지만, 지겹지 않았다. 차의 여러 가지 기능도 시험해 보고, 신나는 음악도 들었다. 파란 하늘을 보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마셨다. 거울에 미친 내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처음 산 새차라는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관사에 도착해 한적한 곳에 차를 세웠다. 차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고 관사에 올라갔다. 다음 날이 기다려졌다.


아침에 직원들이 차를 샀냐며 한마디씩 건냈다. 나는 그냥 웃고 말았다. 회사 주차장에 있는 아반떼 옆에 차를 세웠다. 두 차를 배경으로 마지막 사진을 찍었다. 오후에 중고차 판매인이 왔다. 그는 차 곳곳을 꼼꼼히 살폈다. 세월의 흔적이 발견될 때마다 내 치부가 드러나는 듯 부끄러웠다. 그리고는 애초 가격보다 50만 원이나 후려쳤다. 나는 5만 원이라도 더 주라고 했지만, 그는 단칼에 거부했다. 더  흥정을 하고 싶지 않았다. 깔끔하게 뒤처리나 해 주라고 부탁했다. 서류에 이름을 쓰고 차 열쇠를 건넸다. 회사 정문을 나가는 차 뒷모습을 봤다. 뭉클하고 애틋했다. 그 감정은 꽤 오래갔다. 길에서 같은 종류의 차만 봐도 눈길이 갔다. 


그 기분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었다. 글을 쓰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러면 세월이 지나도 그 감정을 떠올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타인과 공유할 수도 있다. 사진으로는 대신할 수 없는 글의 장점이다. 결국 몇 달을 그냥 보냈다. 스스로 글을 쓰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내가 여섯 학기째 글쓰기 수업을 듣는 이유다. 글쓰기의 가장 큰 힘인 '마감'이 있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숙제를 내주면 글벗들은 기한에 맞춰 글을 카페에 올린다. 수업에서는 꼼꼼하게 문장을 살펴보며, 고쳐 나간다. 한 학기면 15편쯤 쓴다. 벌써 내 글은 75편이나 모였다.


두 달의 방학을 마치고 9월 둘째 주에 개강했다. 목포대학교 평생교육원에 있는 과정이지만 코로나 19 탓으로 수업은 인터넷 줌으로 진행된다. 다행히 인천으로 발령이 나서도 공부할 수 있게 됐다. 첫 번째 강의는 '글 쓰는 방법'이다. 여섯 학기째 듣다 보니 처음은 대충 넘기려고 했다. 회사 일도 바빴다. 공교롭게도 첫 과제는 '첫 수업을 듣고 느낀 소감'이었다.  난감했다. 수업을 듣지 않았으니, 쓸 내용도 없었다. 이번에는 건너뛰려고 했지만 그러면 나태해질 것 같았다. 금요일 새벽 세 시에 눈이 떠졌다. 선생님이 올려 주신 강의를 틀었다. 여러 번 들었지만, 또 새로웠다. 채 30분도 듣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목포로 내려오는 버스에서 나머지를 들었다.


글을 쓰려면 많이 그리고 깊게 생각해야 한다. 화요일부터 한 편을 어떻게 쓸 것이지 계속 고민한다. 이삼 일 지나서야 겨우 토대를 잡는다. 일요일까지 비문과 맞춤법을 교정하고 나면 한 편의 글이 완성된다. 글쓰기 수업 시간에 선생님과 함께 공부하다 보면 더욱 완벽한 글이 만들어진다. 글 쓰는 데 사유가 깊어질수록 마무리하고 나서 느끼는 희열은 배가된다. 글을 쓰고 나서 처음 맛본 창작의 기쁨이다.


회사에서는 문서를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다. 요즘에는 단어 하나까지 세심히 살핀다.  문장의 의미가 정확히 전달되는지도 꼼꼼히 본다. 가끔 말이 안 되는 문장을 보면 고쳐 주고 싶은 충동도 생긴다. 직원들은 가끔 내게 글을 잘 쓴다고 칭찬해 준다. 나도 모르게 '글쓰기 힘'이 붙은 것 같다. 운동을 꾸준히 해야 근육이 단단해지는 것처럼, 글도 마찬가지다. 내가 계속 쓰려고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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