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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 바다 Sep 26. 2021

큰집

몇 달 전 부안 고모부가 돌아가셨다. 큰집 식구들은 장례식장에 가기 전에 정읍 집에 들렀다. 거동이 불편한 우리 어머니 때문이었다. 사촌 형제들을 오랜만에 보니 반가우면서도 살짝 어색했다. 큰아버지는 내게 시간이 되면 서울에 놀러 오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큰어머니를 오랫동안 뵙지 못했다. 


추석을 몇 주 남겨 놓은 토요일('21. 9. 10.), 인천 관사에서 큰집 가는 방법을 검색했다. 대중교통으로는 2시간 30분, 자가용으로는 1시간 30분이 걸렸다. 몇 번을 고민하다 차로 결정했다. 서울 길을 운전하면 온 신경이 곤두서지만, 지하철을 타는 것보다는 여러모로 나을 것 같았다. 큰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집에 계셨다. 오후에 인사드리러 가겠다고 말씀드렸다. 11시쯤 이른 점심을 해결했다. 어머니가 몸이 안 좋아진 후로 한 끼를 차리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인천에서 서울로 가는 고속도로는 많이 막히지 않았다. 서울 하늘도 유난히 파랬다. 큰집은 내가 열 살 무렵, 정읍에서 서울로 이사했다. 아이들 교육 때문이었다. 장위동 시장에서 과일과 쌀을 팔았다. 조그만 한식당을 하기도 했다. 할머니가 있을 때 큰집은 우리 집처럼 편했다. 초등학교 때는 방학이 시작되면 올라가 개학 때가 돼서야 내려왔다. 그게 당연한 일처럼 여겨졌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일 년에 두세 번은 들렀다. 사촌들이 결혼하고, 아기를 낳자 자연스레 멀어졌다. 내비게이션에서 자세히 알려줘도 따라가기 어려운 길을 벗어날 무렵 큰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점심을 같이 하자고 했다. 이미 먹었다고 말씀드렸지만 소용없었다. 익숙한 풍경이 조금씩 나타났다. 큰아버지는 골목에 마중 나와 있었다. 몇 년 전부터 큰집 주변은 재개발이 시작됐다. 큰집은 이제 아파트로 둘러 쌓인 도시에 몇 가구 남지 않은 주택이었다.

 

큰집 계단을 오르니 고향에 온 것처럼 포근했다. 집 곳곳에서 35년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할머니 냄새도 나는 듯했다. 어릴 적 뛰놀던 기억도 어렴풋이 떠올랐다. 큰어머니는 식사를 준비하고 계셨다. 큰어머니는 성격부터 외모까지 전원일기의 고두심을 닮았다. 어렸을 적에는 큰어머니가 엄마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큰어머니는 걷는 게 살짝 불편했지만 그래도 건강해 보였다. 큰어머니에게 작은 정성이 담긴 봉투를 드렸다. 그리고 식탁에 앉았다. 김치찌개와 고등어자반, 반찬 몇 가지가 차려졌다. 잘 익은 고구마순 김치에 자꾸 손이 갔다. 밥을 먹었다는 게 거짓말처럼 한 그릇을 비웠다. 

 

식사가 끝나고 커피와 과일을 차려줬다. 큰아버지와 큰어머니는 기자를 하던 사촌 큰형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서운해 하는 것 같았다. 이미 10년이 넘은 일이지만 지금도 그래 보였다. 최근에는 큰누나 가족까지 미국에 있는 대학으로 파견을 가서 더 그랬을 것이다. 가장 친하게 지내던 사촌 동생이 초등학생 딸과 함께 집에 들렸다. 친형제처럼 지내던 사이인데, 어쩌다 보니 이제야 딸을 처음 보게 됐다. 딸은 내가 어색했는지 몸을 비비 꼬며 숨었다. 큰아버지는 손녀에게 당숙이니까 인사를 하라고 했다. 그 호칭을 들으니 이제 점점 먼 친척이 되어 간다는 게 실감이 났다.    

 

담소는 저녁 시간 전 마무리됐다. 늦게 출발하면 길도 막힐뿐더러 큰어머니에게 부담을 드리고 싶지 않았다. 큰아버지는 집에 내려가지 않는 주말이면 부담 없이 오라고 했다. 큰어머니는 고구마순 김치를 챙겼다. 그것마저 사양하고 싶지는 않았다. 큰집을 나서 골목을 걸었다. 몇 년 후면 큰집도, 이 길도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인천에 내려오면서 아버지에게 전화를 드렸다. 아버지는 벌초 걱정을 했다. 75세가 되셨지만, 지금까지 혼자 했다. 이제는 체력적으로 조금 버거운가 보다. 조상 묘니까 누구라도 해야 한다. 그렇다고 내가 떠맡고 싶지도 않다. 모른 척할 수도 없다. 장손인 사촌 형이 다른 나라로 가 버려서, 사촌 동생들도 불만이 있는 듯했다. 큰아버지와 아버지가 건강하실 때 준비해야 할 일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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