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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 바다 Oct 15. 2021

아들 또는 딸 결혼식 주례사

아들 또는 딸 결혼식 주례사


주말부부를 하려면 삼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 조상님은 은혜를 많이 베풀었나 봅니다. 결혼하고 나서 10년쯤은 같이 살았습니다. 제가 국가직 공무원이어서 발령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직급이 올라가면서 2, 3년에 한 번씩은 혼자 떠돌아 다녔습니다.


물론 좋은 점도 있었습니다. 2015년, 인천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전업주부인 집사람도 함께 올라오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결국 목포에 남았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장모님 때문이었습니다. 장남 같은 역할을 하는 딸을 곁에 두고 싶으셨나 봅니다. 아내는 그 선택 때문에 혼자 아이들을 키웠습니다. 그때 주원이는 9살, 혜윤이는 6살이었습니다. 한참 손이 갈 때였지요. 아내는 전화를 할 때마다 투정을 부렸습니다. ‘지랄 총량의 법칙’이라고 들어보셨나요? 한동대 김두식 교수의 <불편해도 괜찮아>에 나오는데, 사람이 평생 할 지랄의 양이 정해졌다는 의미랍니다. 저는 육아도 총량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와 아빠가 해야 할 몫이 있을 것입니다. 아내가 독박을 썼으니, 저야 편했지요. 이 자리를 빌어서 아내에게 미안했고 고생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2018년 목포에서 2년을 보내고 다시 인천으로 왔습니다. 아이들은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 5학년이 됐습니다. 아이들에게 같이 가자고 떠보니 손사래를 쳤습니다. 아빠보다는 친구들이 더 좋은 나이가 됐습니다. 아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전에는 매주 내려오라고 성화더니 요즘은 오가는 게 힘드니 좀 쉬라고 합니다. 교통비 때문은 아니라고 믿고 싶었습니다. 집에 내려가지 않는 주말은 온전한 제 시간입니다. 여행도 하고 책도 읽습니다. 먹고, 자고, 노는 것도 내 맘대로 합니다. 사람들은 이래서 주말부부가 좋아 보이나 봅니다. 


조상의 덕은 제가 다 받겠습니다. 아마 6대까지 덕을 쌓지도 않으셨을 겁니다. 그러니 신랑 신부님은 평생 함께 사세요. 저만 재미 보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주말부부 전문가인 제가 다시 결혼한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요즘은 부부가 같이 벌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혼자 일해도 충분히 살 수 있습니다. 제 배를 보시면 얼마나 잘 먹고 사는지 아실 겁니다. 


아이와 세월은 기다려주지 않았습니다. 주말부부로 떠돌아다니는 사이에 아이들은 어른이 됐고, 우리 부부는 며느리(사위)를 보게 됐습니다. 주원(혜윤)이가 어렸을 때 함께 놀아 주지도, 고민도 들어 주지 못한 점, 그리고 조상의 덕을 혼자 보게 된 점 이 자리를 빌어서 사과하겠습니다.  


오늘 많은 것을 반성하게 됐습니다. 이 자리를 만들어 준 며느리(사위)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이제는 사랑하는 아내와 계속 함께 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신랑 신부는 영원히 같은 방에서 잘 수 있도록 염원이 담긴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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