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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 바다 Dec 04. 2021

홍어앳국

홍어앳국


내 고향 정읍에서는 큰일을 치를 때면 상에 홍어무침이 올라왔다. 도라지, 미나리, 무말랭이, 알밤을 고추장과 고춧가루를 넣고 매실액과 식초로 버무리면 새콤하면서도 달콤한 반찬이 됐다. 홍어 뼈가 붙어 있는 살은 오독오독 씹히는 식감도 좋았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홍어는 농촌에서 유일하게 맛볼 수 있는 날생선이었다. 홍어는 쉽게 상하지도 않을뿐더러 삭혀서도 먹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잔칫날 홍어무침이 빠지면 뭔가 허전했다.


28살에 목포로 발령을 받았다. 회사는 삼학도에 있었다. 꽃샘추위가 기승부리던 어느 날, 선배와 외근을 나갔다. 항구를 돌아다니며 배를 검사하는 일이었다. 생선 비린내를 담뿍 담은 바닷바람은 유난히 차가웠다. 코끝이 시려지고 허기가 졌다. 선배는 선창의 허름한 식당으로 나를 데려갔다. 그리고는 당연한 듯이 홍어앳국을 시켰다. 신선한 홍어 내장과 뼈로 만든 애(내장)국을 처음 먹게 됐다.


볼의 차가운 기운이 식기도 전에 펄펄 끓는 뚝배기가 나왔다. 국물을 식혀가며 한 입 삼켰다. 순간 박하사탕 열 개를 먹은 것처럼 코가 뻥 뚫렸다. 먹는 내내 혀가 얼얼했다. 어려서부터 홍어를 먹어서 거부감은 없었다. 깨끗이 한 그릇 다 비웠지만, 다시는 그 집을 찾지 않았다. 식당을 나오는데, 혀가 이상했다. 혀 껍질이 벗겨진 것이다. 홍어 내장에 열을 가하면 암모니아가 극에 달해서 그렇다고 했다. 선배는 그 맛에 먹는 거라며 껄껄 웃었다.


사십 중반이 넘어서면서부터 그 매력에 빠졌다. 장모님은 남도 토박이다. 진도가 고향이어서 생선 요리를 잘한다. 장모님은 생홀아비로 사는 사위를 안쓰러워한다. 주말부부를 하는 사위가 내려오면 조기도 굽고, 생선찜도 만든다. 가끔 흑산도에서 구한 홍어로 애국을 끓인다. 아픈 추억이 있었지만 한두 번 먹다 보니 뭔가 당기는 힘이 있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먹으면 먹을수록 더 그랬다. 잘 말려진 시래기와 듬뿍 담긴 홍어 애로 푹 끓인 국물을 한 입 삼키면 피곤이 사라진다. 고소한 애는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밥을 말아 한 그릇 비우면 온몸이 따뜻해진다. 홍어앳국은 겨울에 먹어야 제 맛이다.


홍어는 버릴 게 하나도 없다고 한다. 뼈는 물론 내장까지도 먹기 때문이다. 하지만 뭣도 모르는 인간들은 전라도 사람을 ‘홍어’라고 비하한다. 삭히면서 생기는 큼큼한 냄새 때문인 것 같다. 편견에 사로잡히면 한 가지 사실만 보고 그게 다라고 치부한다. 그래서 치졸해진다. 지역을 혐오하고 홍어를 비하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홍어, 함부로 부르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따뜻한 사람이었느냐?”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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