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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 바다 Apr 02. 2022

누군가를 돕는 일

누군가를 돕는 일


그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심장이 살짝 뛴다. 누군가는 아무 것도 아닌 일을 부풀린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결론도 그렇게 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행동이 잘못됐다는 내 판단은 변하지 않았다. 나는 약자를 위한 작은 목소리를 냈고, 그 외침은 나를 부끄럽게 만들지 않았다.


그날 나는 도원 체육관에 있었다. 작년 가을 여자 프로농구 를 직접 가서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목포 집에 내려가지 않는 주말에 인천에서 경기가 열리면 빠지지 않았다. 그날은 특히 기대가 컸다. 인천 신한은행과 1위 팀 국민은행의 경기였기 때문이다.


경기 시작 20분 전에 자리에 앉았다. 선수들의 얼굴을 또렷하게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잡담까지 들렸다. 선수들은 함성을 지르며 몸을 풀었다. 열정이 가득 찬 소리에 나까지 함께 뛰는 듯했다. 텔레비젼에서나 보던 국가대표 박지수와 강이슬 같이 유명한 선수들을 보니 더 설렜다.


시간이 가까워 오자 빈 자리가 하나둘 사라졌다. 인기가 많은 팀이어서인지 평소보다 사진을 찍는 관중도 많았다. 내 옆의 여자, 내 앞의 남자도 그랬다. 카메라를 전혀 모르는 내가 봐도 몇백만 원은 훌쩍 넘을 것 같은 고급 장비들이었다.


장내 아나운서가 웅장한 목소리로 홈 팀 신한은행 출전 선수를 소개했다. 화려한 조명과 웅장한 음악에 맞춰 선수들이 경기장에 들어섰다. 치어리더는 춤을 추며 응원을 이끌었다. 섹시하면서도 귀여운 얼굴에 자꾸 시선이 갔다. 눈길이라도 마주치면 민망할까 봐 곁눈질만 했다. 아주 잠시 그랬다.


1쿼터는 역전을 거듭하며 접전을 벌였다. 2쿼터가 되자 점수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국내 최장신 센터 박지수가 골 밑을 지키고, 3점 슈터 강이슬의 골이 터졌다. 승부는 이미 기운 듯했다. 그때쯤 앞에 앉은 내 또래의 남자가 가방에서 작은 동영상 카메라를 꺼냈다. 잘 찍히는지 확인도 했다. 그리고는 구석에 고정 시켰다. 그 화면에는 치어리더의 춤 추는 장면이 녹화되고 있었다. 렌즈는 몸 전체가 이닌 특정 신체 부위를 집중하고 있었다. 물론 치어리더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알았다면 수치심과 모멸감을 느꼈을 것 같다.


잠시 그러다 말겠지 했는데, 10분을 넘어 가고 있었다. 나는 불쾌했다. 치어리더를 봤다. 그녀는 웃고 있었지만 , 가엽고 불쌍했다. 나는 그의 행동을 내 스마트폰으로 찍으려고 했다. 순간 오지랖 넢다는 소리나 들을까 봐 그냥 모른 채하려고도 했다. 하지만 그녀와 초롱한 눈과 환한 미소를 볼수록 내 양심은 끓어 올랐다. 분명 잘못된 행동을 지적하고 그에 합당한 조치를 당하게 하고 싶었다. 용기를 냈다.


다행히 여자 경호원이 근처에 있었다. 나는 손을 들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남자를 가르켰다. 경호원은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이 남자가 카메라로 치어리더를 몰래 찍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내 목소리는 경기장의 환호성에 묻혔지만, 경호원은 알아들은 듯했다. 그리고는 "관중이 치어리더를 찍는 것은 어떻게 할 수 없어요."라고 답했다. 나는 어의없었다. 어떻게 짧은 한 문장으로 그의 행동을 정당화 시킬 수 있단 말인가.


그는 나와 경호원과의 대화를 들었는지, 잠시 후 그 카메라를 가방 깊숙히 넣었다. 나는 후회가 됐다. 그때 그의 행동을 내 머릿속이 아닌 스마트폰에 담았어야 했다. 그러면 결과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유쾌하지 않은 그 영상도 함께 지워졌을 것이다. 경기가 끝날 때까지 가슴이 계속 콩닥 거렸다. 해코지를 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과 잘못된 행동을 바로 잡지 못했다는 정의감이 반복해서 교차했던 것 같다.


그날 경기는 신한은행의 대패로 끝이 났다. 일을 마친 치어리더들도 고생했다며 동료의 어깨를 토닥였다. 우리 앞에서 두 시간 가까이 응원을 이끌었던 그녀도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런 일이 다시 생긴다고 해도 똑 같이 그럴 것이다. 아니 좀 더 정확하고 분명하게 도울 것이다. 그러면서 얻은 기운이 꽤 오래 기분 좋게 해준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비록 그 행동이 제대로 인정 받지 못한다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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