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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 바다 May 04. 2022

딸에게 보내는 편지

어린이날 편지

딸이 제게 보낸 편지랍니다.

혜윤이에게


“이번이 마지막 어린이날인데, 어떤 선물 줄 거예요?”라며 자주 묻는 혜윤이에게 편지를 쓴다. 중학생이 되는 내년에는 “진짜 마지막”, 내후년에는 “진짜 진짜 마지막”이라고 해도 좋단다. 아빠 맘에서 혜윤이는 언제나 어린이일 것 같아. 아니 그랬으면 좋겠어. 아빠는 네 엉뚱한 행동과 새침한 미소에 반한 딸 바보거든.


네가 태어난 날, 아빠는 운명이란 걸 믿게 됐단다. 아빠가 결혼하기 전에 정읍 할아버지는 유명한 점집에서 궁합을 봤대. 점쟁이는 할아버지에게 아들, 딸 손주 한 명씩을 보게 될 거라고 말했어. 너도 알겠지만 혜윤이의 언니가 될 뻔한 아기는 엄마 배에서 나오자마자 하늘나라로 떠났단다. 그 아기가 잘 자랐다면, 그리고 그 점이 맞았다면 네가 아빠의 딸이 되지 않았을 수도 있겠구나. 아빠는 그 아가를 보내면서 약속한 게 있단다. 꼭 닮은 애를 낳겠다고 말이야. 그러면 그 애에게도 덜 미안할 것 같았거든. 그렇게 태어난 게 바로 너야. 아빠는 그 아가에게 미안하면서도 고맙단다. 혜윤이가 아빠 딸이라서 너무 좋거든.


너를 좋아하는 이유는 나를 많이 닮아서야. 물론 얼굴은 아니지만. 너는 오빠와 다르게 세 살 때부터 홍어를 먹었단다. 잘 때 이를 가는 걸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어. 뭐 이런 것까지 닮나 싶었지. 노래 부르고 춤추는 걸 보면 정말 미안하기도 해. 수학을 잘못하고, 물건을 잃어버려서 엄마에게 꾸지람을 들을 때면 아빠도 같이 혼나는 것 같단다.     


며칠 전에 “마스크를 벗으면 혜윤이는 큰일이네?”라고 했던 말 생각나니? 너는 웃으면서 아빠를 째려봤지. 혜윤이를 ‘황혜뿡뿡이’라고 부르고, 못생겼다고 놀리기는 하지만 그게 진심은 아니란다. 예전에 조선시대 미인상을 쓴 기사와 그림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어. 복스러운 얼굴에 둥글고 큰 턱, 가느다란 눈, 가지런한 눈썹이 마치 혜윤이를 보는 것 같았거든. 너는 전형적인 한국의 미인형 얼굴이란다. 그러니까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어. 아빠도 이제 그런 장난 안 칠게.     


예전에 네 생활 통지표를 보고 감동하였던 게 떠오른다. 선생님은 ‘순수하고 정이 많 힘이 약한 친구나 소외된 사람을 도우려는 마음을 지녀 다른 친구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라고 적어 주셨단다. 앞으로도 어려운 사람을 돕는 따뜻한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혜윤아! 아빠가 부탁할 게 있다. 요즘 들어 스마트폰에 너무 빠져 사는 것 같다. 아빠는 그렇게 보내는 시간만큼 책도 읽었으면 좋겠어. 아빠도 요즘 스마트폰 시간을 줄이고 책을 본단다. 책을 읽으면 말도 잘하게 되고, 똑똑해질 거야. 그러면 좋은 친구도 많이 생기겠지. 혜윤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거야.


혜윤아! 아빠랑 네가 가고 싶어 하는 다이소에 가자. 네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어린이날 기념으로 원하는 걸 사 줄게. 그리고 서점에도 가자. 아빠가 좋은 책 골라 줄게. 앞으로도 새침한 미소와 순수함 잃지 말고 건강하게 자라 주렴.


2022. 5. 5. 어린이날, 아빠가 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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