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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 바다 Sep 08. 2022

치과

치과


대부분의 사람은 치과 가는 걸 두려워한다. 아픔을 참지 못하고 “악”을 외쳤거나, 고통을 뛰어넘는 치료비에 “헉”을 삼킨 경험이 있다면 더 그럴 것이다. 내게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의사에게 입안을 보여주는 게 부끄러워서다. 어린 시절의 치부를 들켜 버린 기분이랄까! 내 치아는 한마디로 엉망이다. 피하고 싶다고 언제까지 미룰 수도 없다. 며칠 전에는 앞니에 누렇게 낀 치석 때문에 담배를 피우냐는 질문까지 받았다. 이를 드러내고 환하게 웃는 것도 조심스럽다. 임플란트를 심는 것도 한 살이라도 덜 먹었을 때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몇 년 전, 탄산음료를 좋아하던 한 선배가 치과에 다녀오더니, 이에 중형차 한 대 값을 박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동조를 맞춰 웃고 떠들었지만, 머지않아 내게 닥칠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나는 마음먹으면 빨리 실행에 옮기는 편이다. 싸면서도 실력 있는 치과부터 찾았다. 회사와 협약을 맺은 치과의 할인 행사 게시물을 본 게 떠올랐다. 잘하면 소형 중고차 한 대 값으로 끝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3년 만에, 치과에 갔다. 시작이 반이라고 두렵기보다는 후련했다. 병원은 생긴 지 얼마 안 돼서 깔끔했다. 예약 환자 우선으로 진료해서 금방 차례가 돌아왔다. 직원 안내에 따라 서류를 작성하고, 엑스레이부터 찍었다. 진료 의자에 앉아 있으니 곧 엑스레이 사진이 화면에 떴다. 이름이 없다고 해도 나란 걸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양쪽 어금니는 대학교 때 가짜 치아를 심었고, 충치를 때우지 않은 생니도 몇 개 되지 않았다.

 

잠시 후 의사는 엑스레이 사진과 내 입안을 번갈아 보며 진단을 내렸다. 치석이 쌓여서 잇몸이 좋지 않다고 했다. 임플란트 두 개는 당연하고, 상태가 좋지 않은 이까지 뽑아서 같이 심자고 했다. 부수적인 치료가 필요한 이도 많았다. 의사의 말이 길어질수록 궁금해지는 건 치료비였다. 간호사는 “너무 싸게 해주는 거라면서 누구한테 말하면 안 된다.”라고 속삭이며, 중형 중고찻값만큼이나 되는 숫자를 종이에 적었다. 배려보다는 ‘당신에게만 밑지고 판다.’라는 장사꾼의 달콤한 상술처럼 다가왔다. 간호사도 회사 일 때문에 다음 주부터 치료하겠다는 내 말에 신뢰가 가지 않았는지 쓰리디(3D) 엑스레이 비용 10만 원은 선불로 내야 한다고 했다.

 

아내는 내게 “귀가 얇다며, 세 군데는 가보고 어디서 치료할지 결정하는 게 좋겠다”라고 했다. 생생한 이를 뽑자는 게 내심 걸리긴 했다. 유튜브를 검색해보니, 치과의 과잉 진료로 피해를 본 사례가 꽤 많았다.


문득 관사에 같이 살던 형님의 친구가 회사 근처에서 치과를 한다고 했던 게 떠올랐다. 형님은 전화해 놓겠다고 했다. 친구 소개로 온 환자의 생니까지는 뽑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형님이 소개해 준 의사는 안 그래도 전화가 왔었다며, 엑스레이부터 찍어 보자고 했다. 전 병원에서 찍은 걸 가져오면 안 되냐고 했더니 얼마 되지도 않으니 그냥 해 주겠다고 했다. 진단 결과는 비슷했다. 단지, 상태가 안 좋은 이도 최대한 살려 보자고 했다. 임플란트도 나중에 관리가 어려울 수 있으니 집 있는 데서 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진정한 배려 같아 신뢰가 커졌다.


의사는 치석을 제거하고 잇몸 치료부터 하자고 했다.

잇몸 치료는 잇몸 사이에 낀 치태와 치석을 제거하는 시술이다. 녹색 헝겊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도 감았지만 밝은 조명 때문에 눈 안은 환했다. “세에엑”,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기계음과 함께 물과 바람이 번갈아 가며 입안에 퍼졌다. 맞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마취 주사는 생각보다 견딜 만했다. 마취로 잇몸이 얼얼해지자 치료가 시작됐다. 고통의 세기만큼 어린 시절 이를 잘못 관리한 후회도 커졌다.

 

내가 살던 마을에는 ‘바우배기’라는 점방이 있었다. 나는 돈만 생기면 그곳으로 향했다. 10원에 네 개를 주는 콩과자는 싸서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캐러멜 비슷한데 어찌나 단지 가끔은 머리가 띵할 정도였다. 그 당시 많은 시골 어린이처럼 이는 아침에 한 번만 닦는 것이었다. 결국 스물세 살에 어금니 두 개를 뽑고 인공 치아를 심었다. ‘군것질을 줄이고, 이를 잘 닦을걸’ 하는 반성은 이미 지나가 버린 버스를 아쉬워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결국, 임플란트 치료는 또 미뤘다. 병원비도 부담될 뿐더러, 내년에 발령 날 수도 있다는 나름 합리적인 핑계로 합리화했다. 의사는 크게 권유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치석 제거하는 데 좋다며 워터픽은 꼭 써 보라고 했다.


며칠 후 인터넷으로 두 개를 사서 목포 집에도 뒀다. 중학생 아들은 양치하고 워터픽으로 이 사이를 깨끗이 씻어낸다. 입안이 개운하다며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한다. 집사람은 종종 아이들의 이를 확인한다. 점 비슷한 거라도 보이면 치과로 간다. 이를 건강하고 깨끗하게 관리하는 아이들이 부럽다. 나도 그랬다면 쓸데없는 고민과 아픈 치료도 할 필요가 없었을 텐데 말이다.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면, 워터픽과 칫솔은 꼭 챙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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