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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 바다 Oct 02. 2022

소와 함께했던 추억

소와 함께했던 추억


내 고향은 전북 정읍 화룡 마을이다. 열 가구 남짓 모여 살고, 읍내에 나가려면 버스를 한 시간이나 타야 하는 동네다. 우리 집 뒤꼍에는 대나무밭과 동산이 있고, 집 앞으로는 논과 밭이 펼쳐져 있다. 부모님은 내가 걸음마를 뗄 무렵, 여기에 터를 잡고 산다. 45년이 지난 만큼 많은 게 변했다. 아버지는 논농사를 전부 내려놓았다. 어머니는 밖에 나가려면 지팡이부터 찾는다. 집 곳곳에는 삶의 흔적이 어지럽게 쌓이고 있다. 밥그릇에는 밥풀이 붙어 있을 때도 있다. 부지런하고 깔끔했던 아버지와 어머니도 세월을 이길 수는 없나 보다.


어머니는 내 어린 시절 일을 손주들에게 말하곤 한다. 그중에서도 냇가에서 소를 끌고 왔던 이야기를 자주 한다. 어머니도 그때만큼은 미소를 잃지 않는다. 아이들도 귀를 쫑긋 세우고, 궁금한 걸 열심히 묻는다. 아주 흐릿하게 남아있지만, 동화의 한 장면 같은 일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소를 키웠다. 내가 대학에 가기 전까지 외양간에는 두세 마리의 소가 있었다. 소는 논밭을 갈거나, 짐을 날랐다. 소는 농사를 도울 뿐만 아니라 살림을 불리는 중요한 동물이었다. 아버지는 농사가 한가해지면 소를 냇가로 끌고 갔다. 냇가의 양지바른 곳에는 간격을 두고 수십여 마리가 자리를 잡았다. 소를 적당한 데 묶어 두면, 알아서 풀을 뜯어 먹었다.


어머니의 기억으로는 내가 다섯 살 때였다고 한다. 서쪽 하늘이 검붉어질 무렵, 나는 집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냇가로 갔다. 누군가 시킨 것도 아니었다. 생김새가 비슷한 소 무리 중에서 용케도 우리 소를 찾았다. 아버지가 항상 묶어 둔 데를 찾아갔는지, 소가 먼저 나를 알아봤는지는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 쇠말뚝을 뽑고 소를 끌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 반대였는지도 모르겠다. 소를 앞세우고 흙길을 걸었다. 길에서 만난 어른들이 걱정보다는 칭찬을 했던 게 흐릿하게 떠오른다. 소는 집까지 앞서 걸었고, 스스로 외양간을 찾아 드러누웠다. 부모님은 놀라긴 했지만 나무라지 않았다. 오히려 대견해하며 웃어넘겼다. 부모님은 그 소의 성질을 꿰뚫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중학생이 될 무렵 아버지는 경운기를 샀다. 소는 일에서 벗어났지만, 냇가에는 가지 못했다. 길들이지 않아 부리기도 어렵고, 소도둑도 늘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는 시간이 되면 여물을 줘야 했다.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누가 이기나 보자는 듯 울어댔다. 농번기가 되면 나도 소를 챙겨야 했다. 지푸라기를 들고 외양간에 다가가면 소는 꼬리를 흔들었다. 소는 눈동자로 말하는 듯했다. '왜 이제 나와?'라고 화를 내는 것도 '잘 먹을게'라고 고마워하는 것도 같았다.

 

아버지가 평소보다 외양간에 자주 드나들면, 송아지를 낳는다는 신호였다. 아버지는 내게 "수송아지면 자전거를 사 줄게."라고 여러 번 약속했다. 아버지는 가끔 소 곁에서 날을 새기도 했다. 송아지가 건강하게 태어나면 아버지의 얼굴도 환해졌다. 갓 태어난 송아지는 여느 새끼 동물처럼 귀여웠다. 일주일이 지나면 망나니가 됐다. 이웃의 농작물을 망치고, 찻길을 뛰어다니기도 했다. 그때쯤 되면 또 이별의 순간이 왔다.

 

새벽이 되면, 파란색 용달차가 외양간 앞에 서 있었다. 아버지와 짧은 흥정이 오가고 나서 송아지는 외양간에서 끌려 나왔다. 소는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었다. 나는 그날이 되면 평소보다 일찍 학교에 갔다. 며칠간 정들었던 송아지와 헤어지는 것도, 소의 절규 어린 소리를 듣는 것도 싫었기 때문이다. 소는 이삼일간 목이 쇠도록 울어댔다.

 

아버지는 내가 대학생이 될 무렵부터는 외양간을 창고로 썼다. 여러 가지 이유 중에 소똥도 있었다. 우리 집은 동네 한가운데 있다. 예전에는 소똥을 거름으로 쓰려고 마당 한구석에 보관했다. 집안에서 소똥 냄새가 풍겼고, 파리도 많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웃들의 배려심이 참 깊었던 것 같다.

 

나는 유튜브로 동물을 챙겨 볼 만큼 좋아하지만, 키우고는 싶지 않다. 동물과 헤어지는 게 마음 아프다는 걸 여러 번 겪었기 때문이다. 요즘도 소를 보면 가끔 시골집의 외양간이 그려진다. 외양간을 보면 어린시절의 추억이 떠오른다. 소의 눈망울이 보이고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외양간을 부지런히 오가는 부모님의 젊은 시절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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