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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 바다 Mar 11. 2023

아들의 꿈

아들의 꿈


‘아버지가 잡초이고 어머니도 잡초인데, 딸에게 사프란 뿌리가 되기를 기대하는가?’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 등장하는 조던 교수가 자신이 지지하던 우생학을 합리화하며 예로 들었던 아랍 속담이다. 교육은 결코 유전을 대체하지 못한다는 의미였다. 현대에 들어서며 우생학은 비과학적이라는 게 밝혀져서 폐기됐다. 하지만 그가 인용했던 속담은 내게 다른 의미로 깊은 여운을 남겼다.
 
아내는 내가 자녀 교육을 방임한다고 나무란다. 아이들이 잘하려면 아빠의 역할도 중요한데 너무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나는 공부는 스스로 해야 하는 거라고 믿는다. 올해 초, 이 문장을 읽고 나서 내 교육 가치관은 더 확고해졌다. 아이들이 못하면 잡초인 부모로서 미안해하면 되고, 그 반대면 아이에게 고마워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마음은 더 편안해졌다. 아내 속은 더 뭉그러졌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들은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아들은 엄마의 권유 반, 자기 의지 반으로 기숙사에 지원했다. 아들은 떨어질 것 같다며 걱정했다. 몇 명 뽑지도 않는 데다가 중학교 내신도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내는 기숙사 배정 점수에 50%가 반영되는 반 배치 고사를 잘 보면 된다고 다독였다. 며칠 후 아내에게 기숙사 합격 문자가 왔다. 아들은 환호하면서도, 떠나 지낼 일을 걱정했다. 가장 기뻐한 건 중학교에 들어가는 딸이었다.
 
기숙사에는 개학 전날인 3월 1일에 들어갔다. 짐은 아내와 아들이 쌌다. 이불, 옷가지, 생활용품까지 챙기니 한 짐이었다고 했다. 주말부부로 인천에서 지내는 내 몫도 아내가 대신했다. 아들이 부모의 품을 벗어난다고 생각하니 대견하면서도 안쓰러웠다. 아들을 군대에 보내는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 가족 대화방에는 ‘집에 가고 싶다’라는 아들의 문자가 남아 있었다. 새벽 열두 시 52분에 보낸 걸 보니 더 짠했다. 아들에게 고생이 많다며 힘내라는 내용의 답글을 보냈다. 아들은 아침이 가득 담긴 식판 사진을 보냈다. 잘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 같았다.
 
아들은 기숙사 시설이 좋지 않다고 했다. 혼자 방을 쓰다가 둘이 같이 지내는 것도 어색했을 것이다. 아내는 다른 학교와 비교하면 호텔이라고 했다. 고위 공무원 아들의 학교 폭력 사실이 알려져 세상이 시끄러웠다. 아들 때문에 그런 뉴스가 더 눈에 들어왔다. 같은 방을 쓰는 친구와 친해졌는지 궁금했다. 아들에게도 사이좋게 지내라고 당부했다. 아들은 친구들과 같이 밥 먹고, 같이 자니 식구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아들은 기숙사에서 지내는 게 힘은 들지만, 공부는 더 잘된다고 했다. 아들은 중학교 3학년 2학기에 공군사관학교를 목표로 삼았다. 의지가 확고했다. 눈빛은 살아났고 의욕은 충만해졌다.
 
아들은 이번 주 금요일 열 시에 자율학습을 마치고 학교를 나왔다. 아내와 마중을 나갔다. 공군사관학교에 다니는 친구 형을 만나기로 했단다. 아들이 친구에게 꿈을 말하자 자기 형이 생도라며 자리를 주선했다고 했다. 그 형도 흔쾌히 약속을 잡아 줬다. 메모지까지 챙긴 아들은 자정이 넘어서 들어왔다. 아들은 마치 생도가 된 것처럼 흥분돼 있었다. 그 형의 자신감 넘치는 말투와 행동이 너무 멋있다고 했다. 생도가 되면 미팅이 끊임없이 들어온다는 조언도 큰 동기 부여가 된 듯했다.
 
아들은 안과에 가 보자고 했다. 사관학교에 가려면 시력이 좋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들은 우리 부부와 다르게 눈이 좋지 않다. 어렸을 때 어두운 데서 책을 많이 읽은 탓이다. 병원에 가려니 내심 걱정된다. 자녀가 목표를 세우고 꿈을 이루려고 최선을 다하는 걸 지켜볼 수 있다는 건 부모로서 최고의 행복인 것 같다.
 
그 책에서는 민들레 법칙이 나온다. 어떤 사람에게 민들레는 잡초일 뿐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민들레는 약초 채집가에게 약재이고, 화가에게는 염료이며, 아이에게는 소원을 빌게 해주는 존재이자, 나비에게는 생명을 유지하는 수단이 된다. 아들이 지금처럼만 한다면, 사회에서 꼭 필요한 ‘민들레’가 될 것 같다. 비록 눈이 좋지 못하거나, 성적이 나오지 않아 원하는 꿈을 이루지 못한다고 해도 그렇다. 민들레처럼 하늘을 훨훨 날고 싶은 아들의 꿈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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