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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 바다 Mar 18. 2023

종교의 자유

종교의 자유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대한민국 최상위 법인 헌법의 제20조다. 약 15년 전, 나는 이 조문을 세심히 살폈다. 읽으면 읽을수록 원망스러운 법 조문이었다. 악마들이 나쁜 짓을 합법적으로 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면죄부 같았다.
 
영희는 몇 달 전부터 문자를 종종 보내왔다. 좋은 데 가려면 꼭 교회에 다녀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회사나, 길에서도 포교하는 사람을 봐 왔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어느 날, 철수에게서 연락이 왔다. 영희가 이상한 교회에 빠졌다고 했다. 혼란스러웠다. 오히려 사이비 종교라는 그의 주장이 믿기지 않을 만큼 교회 이름이 평범했기 때문이다.
 
철수의 확신을 믿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인터넷을 뒤져 보니 봉사를 많이 하는 좋은 교회라는 기사가 넘쳐났다. 그 기사의 중심에는 60대 여성 한 명이 있었다. 우리나라에 살고 있던 재림 예수가 죽고 나서 그 뒤를 잇는 자칭 ‘신’이었다. 인터넷을 점령한 교회의 ‘선’한 영향력을 알리는 기사를 가장한 ‘광고’ 한 켠에는 피해 가족의 울분도 담겨 있었다.
 
당장 영희를 구해야 했다. 영희에게도 전화를 걸어 이상한 데 그만 다니라고 화를 냈다. 계속 다닐 것이면 우리랑 영원히 만나지 말자고 했다. 어쩌면 무모한 협박이었다. 그녀는 이미 세뇌됐다. 그리고 교회에서는 이미 대응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우리는 종교적 믿음을 시험하는 마귀였고, 이런 시련은 천국에 가기 위한 과정이기 때문에 흔들리면 안 되다는 것이다. 영희는 자기 교회는 그런 데가 아니라며 짜증을 냈다. 그러면서 목사를 한 번만 만나 보라고 했다. 우리는 그러겠다고 했다. 그게 그녀를 구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 같았다.
 
우리는 교회에 찾아갔다. 일반 건물 3층에 있었다. 교회에는 아주머니, 청년,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내부는 평화스러웠다. 교회에는 레오나노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이 걸려 있었다. 자기들이 믿는 검정머리 한국 예수 사진은 보이지 않았다. 신도들의 눈빛은 선해보였다. 목소리도 상냥했다. 영희는 우리를 목사 방으로 데려갔다. 목사는 검은 양복을 입고 있었다. 머리는 기름칠을 해서 반듯하게 넘겼고, 얼굴은 윤기가 흘렀다. 말투는 차분했다. 우리는 왜 동양인, 그것도 한국 사람이 재림 예수냐고 물었다. 교회를 안 다니니 성경적 논리로는 이길 수 없어서 생각해낸 질문이었다. 목사는 성경을 넘기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몇 쪽을 가르키더니, 이 구절이 이 분이 하나님인 것을 증명하고 있다고 했다. 내가 보기엔 전혀 논리적이지 않았다. 들으면 들을수록 화가 솟구쳐 올랐다. 이런 멍청한 말에 속아 넘어간 영희가 안쓰럽기보다는 미웠다. 먼저 흥분을 이겨 내지 못한 것은 나였다. 목사에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책상을 내리쳤다. 목사는 나를 설득하지 못했고 나도 영희를 내편으로 만들진 못했다. 그리고 우리는 교회에서 쫒겨났다. 우리 같은 사탄은 이 영적인 공간에 들어올 수 없다며 목사도 언성을 높였다. 상냥했던 아주머니는 악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우리에게 마귀라고 소리쳤다.
 
그녀의 영혼은 이미 한국인 재림 예수가 지배하고 있었다. 내 의지와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나는 ‘교회 피해자 모임 카페’에 가입했다. 성경을 잘 모르는 내가 교리적으로 비판할 수 없었다. 이교회 때문에 가정 불화에 시달리거나 이혼한 가정도 꽤 많았다. 가족이 교회에 빠진 이유도 빠져가는 과정도 대부분 비슷했다. 살펴 보면 볼수록 믿음이 안 가는 교회였다. 하나하나가 거짓으로 이뤄진 집단이었다.
 
먼저 전도 방식이다. 그들은 대학 동아리를 위장하거나, 설문 조사를 가장하여 접근한다. 집에서 혼자 애를 보는 젊은 엄마가 그들의 주된 사냥감이다. 아이를 처음 키우면서 외롭거나 고독해하는 심리를 교묘하게 파고 든다. 처음에는 친한 동네 언니로 다가간다. 자신이 교인인 것을 철저하게 숨긴다. 자신을 만난다는 것도 가족에게는 알리지 말라고 한다. 친밀감과 신뢰 관계가 만들어졌다고 생각될 때부터 본색을 드러낸다.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선한 사람들을 영혼을 사들이는 악덕 영업 사원들이다.
 
내가 그들을 증오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거짓으로 교묘하게 사람을 속이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인터넷에 그 교회를 검색하면 기사를 가장한 광고가 넘쳐 난다. 대충 읽어 보면 교회에서 기자에게 의뢰한 기사임을 알 수 있다. 돈을 준 광고성 기사라는 합리적 의심이 들기도 한다. 댓글을 보면 더 가관이다. ‘이 교회 참 좋아 보인다.’, ‘우리 집 주변에 있는데, 한번 가봐야겠다.’, ‘이 교회 다니는 신도들 다 착하더라’라는 댓글이 줄이어 달린다. 머리만 풀에 감추는 꿩은 귀엽기라도 하지, 종교를 믿는다는 사람들이 참 뻔뻔하기도 하다.
 
며칠 전에 넷플릭스로 ‘나는 신이다’를 봤다. 자칭 ‘메시아’라고 주장하는 자들을 고발하는 프로그램이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영희가 다니는 교회는 나오지 않았다. 우리나라에는 자신이 재림 예수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천 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개신교에서 추정하는 이단 신자만 66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의 우려와는 다르게, 영희는 평범하게 살고 있다. 그 교회도 계속 다니면서 말이다. 그가 믿는 그 신도 이제 80대 할머니가 됐다. 어쩌면 그 때 내 걱정은 기우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 교회를 증오한다. 아이들에게도 친구들이나 어른들이 이유없이 친절하게 대하면 포교가 아닌지 의심하라고 가르친다. 그들의 문제점 중 하나는 사회적 신뢰를 깨 버린다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영희’는 우리의 친구, 이웃, 가족일 수도 있다. 그 ‘영희’ 때문에 고통에 빠져 사는 가족들도 많다. 헌법에서 말하는 종교의 자유에는 네 가지가 있다고 한다. 종교 선택의 자유, 포교의 자유, 타 종교를 비판할 수 있는 자유, 자신의 종교를 밝히지 않을 자유이다. 나는 포교의 자유를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을 속이거나, 기만하는 건 종교의 자유가 아니라 범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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