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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 바다 Apr 02. 2023

필리핀 해양 오염

필리핀 해양 오염


지난 2월 28일, 필리핀해상에서 기름 80만 리터를 실은 유조선(프린센스 엠프레스호, 500톤급)이 침몰했다. 기상이 안 좋은데, 엔진까지 고장 나면서 복원력을 잃은 듯했다. 선원은 모두 구조했지만, 선박에 실린 기름이 유출됐다. 기름은 사고 지점에서 200km 떨어진 데까지 흘러갔고, 주변 해역이 심각하게 오염됐다. 해양 오염 방제 업무를 하다 보니, 외국에서 일어난 큰 오염 사고까지 관심을 둔다. 인접국에서 나면 우리 해역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그렇지 않다고 해도 나중에 사고 처리할 때 참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팀 직원은 사고 자료를 만들어 국 직원들과 공유했다. 여기까지면 우리의 일은 끝나는 듯했다.

 
며칠 후부터 우리나라 언론에도 사고 소식이 나왔다. 필리핀 정부는 오염이 심한 데다 방제 자재와 기술이 부족해 머리카락으로 기름을 닦아 낼 정도로 애를 먹고 있다고 했다. 주변 해역 주민들은 어업이 금지되고 관광객이 끊겨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도 했다. 우리 정부는 필리핀 정부에 도울 것이 없는지 물었다. 필리핀 정부는 미국과 일본에 이어 우리나라에도 방제 물품 지원을 요청했다.
 
이 업무는 우리 대외협력팀에서 담당했다. 처음 있는 일이라 다들 어리둥절했다. 해양 오염은 '오염 원인자 책임 원칙(환경 오염을 일으킨 자는 환경을 회복, 복원할 책임을 지며, 그에 드는 비용을 부담한다는 국제 환경법의 기본 원칙)에 따라 오염을 일으킨 자가 책임을 지기 때문이다. 이번 사고도 그렇게 흘러가는 듯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인도적 지원을 결정했다. 
 
먼저, 지구의 환경을 보전하는 것은 모든 국가가 함께 해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필리핀  정부는 이번 오염 사고로 591ha(헥타르·1㏊=1만㎡) 일대의 산호초가 오염되고 1천626ha 규모의 맹그로브와 362ha 규모의 수중 식물 서식 지대가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곳은 블루카본(염생식물, 잘피 등 연안에 서식하는 해양생태계가 흡수하는 탄소로 육상 생태계보다 온실가스 흡수 속도가 최대 50배나 빠른 것으로 보고)의 보고로 불릴 만큼 지구 기후 변화를 막을 탄소 흡수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자원을 오염으로 잃는다면 필리핀 국민뿐만 아니라 모든 지구인이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다음으로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나라를 돕는다는 인류애였다. 우리나라는 2007년 ‘태안 허베이스피리트호 유류 오염 사고’가 일어났다. 당시 방제 자재가 부족해 볏짚이나 헌 옷으로 기름을 닦아냈다. 미국, 영국은 방제 전문가를 보내 기술을, 일본과 중국은 유흡착재를 지원했다. 123만 자원봉사자와 함께 '태안의 기적'을 이뤄낸 밑거름이 됐다. 이 사고 이후 우리나라는 대산, 광양, 울산 등 3개 해역에 '광역방제지원센터'를 신설하고, 대규모 해양 오염 사고에도 약 7일간 쓸 수 있는 방제 자원을 비축했다. 해양 오염 방제를 도움받던 나라에서 도와 줄 수 있는 나라가 된 것이다.  
 
필리핀에 보낼 자재는 활용도가 높은 유흡착재와 오일펜스, 개인 보호 장구로 정했다. 외교부에서는 운임과 현지 지원을 맡았다. 기술 인력도 파견하기로 했다. 현지 지원 대표 단장은 팀장인 내가 추천했다. 계급도 높고, 영어도 되며, 지도력도 갖추고, 방제 전문 지식도 뛰어난 사람이어야 했다. 한 명이 떠올랐다. 의향을 물었더니, 답을 시원하게 하지 않았다. 첫 번째 해외 파견이기 때문에, 그 질문을 받았다면 누구나 그랬을 것이다. 국장님께는 여러 명을 추천했다. 국장님도 내 맘과 같은 듯했다. 그분에게 그런 분위기를 전했더니, 모든 것을 체감한 듯 담담히 그러겠다고 했다. 그분은 내가 다녀 갔을 때부터 필리핀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지원은 신속하고 체계적으로 이뤄졌다. 배편이 정해지고, 자재를 빼는 날짜도 잡았다. 긴급방제팀의 출국도 서둘렀다. 홍보는 내가 맡기로 했다. 보도 자료부터 썼다. 핵심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 번째, '수원국에서 지원국으로', 두 번째, 우리나라의 첫 번째 해외 지원, 마지막은 한-미-일 국제 협력이었다. 대변인실과 협력해 카드 뉴스도 만들어 소셜 미디어에 올렸다. 보도는 생각대로 많이 나왔다. 긴급방제팀의 지원 준비 과정과 인터뷰가 포함된 2분 30초짜리 기획 보도도 뉴스 채널에 나왔다. 
 
긴급방제팀을 인천 공항까지 배웅했다. 태극기가 달린 모자와 기동복을 입은 네 명은 그 무게만큼 긴장돼 보였다.  목소리에도 설렘 반, 걱정 반이 섞여 있었다. 다음 날부터 긴급방제팀의 활동이 시작됐다. 모든 소식과 정보는 카톡방으로 공유했다. 첫날은 필리핀 해경과의 합동 브리핑이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기자 수십 명은 온 듯했다. 방송용 카메라도 여러 대 보였다. 경험이 풍부한 긴급방제팀장도 놀란 듯했다. 필리핀 국영 방송에서도 비중 있게 다뤘다. 뉴스 기사마다 필리핀을 도와줘 고맙다는 댓글이 여러 개 달렸다.
 
이틀째부터는 해상과 해안 방제 지원를 지원했다. 헬기를 타고 오염군을 탐색했다. 경비 함정을 타고 기름 차단막(오일펜스. 기름의 확산을 막는 자재)을 치는 작업을 도왔다. 미국 해안경비대와 방제 정보를 교환하고, 전략도 논의했다. 작업자들은 유흡착재가 없어 야자 잎을 기름 닦는 데 썼다. 기름 차단막도 부족해 주민들이 풀잎 등을 망에 넣고 바늘로 꿰매 만들었다. 필리핀에서도 마을 주민과 자원봉사자가 '필리핀의 기적'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긴급 방제팀은 무더운 날씨에 작업하는 사람들에게 시원한 물을 주고 싶어서, 30kg이나 되는 생수를 지고 밀림과 야산을 넘었다고 했다. 같은 동료로서 존경스럽고, 마치 내가 한 일처럼 뿌듯했다.  
필리핀 현지 방제 지휘관은 우리나라에서 보내 주는 방제 자재가 오염 사고를 처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긴급방제팀의 기술 조언도 방제 작업을 하는 데 많은 영감을 줬다며 고마워했다.  
 
마지막 날, 긴급방제팀은 대사관이 제공한 차를 타고 마닐라로 이동했다. 긴급방제팀장은 우리 팀과 네 명만 있는 카톡방에 사진을 한 장 올렸다. 대사관 차에서 썬글라스를 끼고 웃으며 스타벅스 음료를 마시는 사진이었다. 부담감을 완전히 덜어 낸 미소였다. 이제 한국에 오면 방제 '스타'가 될 거라고 했더니, 다 우리 팀 덕분이라며, 고마워했다. 이제 그는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친 대한민국 최초의 해외 파견 긴급방제팀장이 된 것이다. 
 
이번 사업은 관계 기관 협조, 언론 보도, 현지 대응 등 모든 게 술술 풀려 재밌게 일했다. 한 주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이번 해외 파견으로 많은 국 직원이 자긍심을 느꼈다고 한다. 관계 기관과 미국과 일본, 필리핀에도 우리나라의 방제 전문성을 다시 한 번 알릴 좋은 기회가 됐다.  
 
4월 2일, 인천에도 벚꽃이 만개했다. 예년보다 개화 시기가 일주일이나 빨라졌다고 한다. 지구 온난화 때문이다. 우리 팀과 국장님은 인천공항으로 팀원들을 마중 나갔다. 팀원들은 떠날 때와 달리 마음이 평온해 보였다. 무언가 해냈다는 안도감이 든 듯했다. 국장님이 저녁 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직원들은 일주일 간의 일들을 자랑했다. 몇 시간으로는 부족할 듯했다. 팀원들에게 맹그로 숲은 잘 있는지 물었다. 다행히 큰 피해는 없는 듯했다. 지구 공동체에 조금이나마 기여한 지난 주는 올해로 공무원을 한 지 20주년을 맞은 내게 주는 선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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