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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 바다 Oct 01. 2019

쉽게 풀지 못한 오해

2019. 5. 3.


전 근무지에서 친하게 지내던 상사가 있었다. 해군 간부 출신으로 업무 처리가 확실하고 통솔력이 뛰어나 직장에서 인기가 많았다. 여러 가지 장점 중 가장 부러웠던 것은 뒤끝 없는 성격이었다. 그는 직원 한 명과 몇 번 크게 다툰 적이 있었다. 둘은 입사 동기로 평소 오빠 동생처럼 지냈지만 주관이 뚜렷해 의견이 충돌하면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싸웠다. 그런데 동료들 걱정이 무색하게 하루 이틀이 지나면 예전 상태로 돌아왔다. 한 번은 비결을 물어보니 먼저 미안하다고 사과했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가장 쉬운 정답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풀지 못한다. 특히 내가 그렇다.

약 2년 전 일이다. 인천, 세종, 목포를 오가던 3년간의 주말부부를 끝낼 기회가 왔다. 장기 근무한 경력에 후임자까지 정해져 인사 담당자에게 발령 언질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일로 경애와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내가 가면 경애는 자리를 옮겨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 둘은 같이 입사한 인연으로 인사 발령 전 동기 모임을 함께했다. 친구들에게는 오빠라고 했지만 나를 어떻게 불렀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술잔이 몇 잔 돌 무렵, 배려하는 마음으로 내가 목포로 갈 것 같으니 어디로 갈지 미리 생각해 보라고 했다. 경애가 진급을 해서 교육원 교수로 내정된 상황을 대충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1박 2일이 기분 좋게 마무리됐다고 착각했다. 문제는 다음 날부터 시작됐다.

친한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경애가 내 험담을 한다는 것이었다. 내 경력까지 조사했는지 10년 넘게 목포에서 장기 근무하고 본청에 가서 가장 빨리 진급하는 특혜까지 받았으면서 또 원하는 곳으로 오는 것은 너무 이기적이라는 것이다. 자기가 1년 만에 밀려나는 게 내가 수작을 부려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친구는 통상 진급하면 발령이 나기 때문에 오해라는 말로 내 입장을 대변해 줬지만 통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 하나의 불만은 내가 모임에서 한 오지랖 넓은 말이었다. 결혼을 안 한 경애에게 나이가 들었으니 상대방을 고르는 눈을 낮춰야 한다고 했던 것이 평가처럼 들려 기분 나빠 술상을 엎어 버리려다 참았다는 것이다. 발령 문제로 내 욕을 하는 것은 기분 나빴지만 내가 실수를 한 것도 있고 발령이 날 경애도 안쓰러워 신경을 꺼 버렸다.

하지만 발령 이후에도 여기저기서 나를 비방한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두 번은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여러 번 들으니 짜증이 났다. 한 번만 그런 이야기가 들리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며 의지를 다졌지만 더 이상 제보는 들어오지 않았다. 다행이었는지 아니면 오해를 풀 수 있는 기회를 놓쳤는지 모르겠다.

이번 주 교육원으로 일주일 교육을 다녀왔다. 5년 만에 처음 가는 거라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역시나 담당 교수는 경애였다. 글쓰기 과정 과제 글감도 ‘오해’여서 교육 기간에 쌓인 감정을 풀고 오라는 복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원에 가면서 화해하는 방법도 고민했다. 다행히 경애가 나를 대하는 태도가 예전 같지 않은 느낌이었다. 먼저 다가가서 오해를 풀었다면 아름다운 결말이 됐겠지만 용기를 내지 못했다. 지난 1년간 내 욕을 그렇게 하더니 요즘은 잠잠하다던 주임 교수의 말도 한몫했다. 같이 회식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지만 분위기가 어색할 것 같아 피해 버렸다. 경애의 감정의 골이 어느 깊이인지 가늠이 안 됐기 때문이다. 결국 교육이 끝나고 작은 용기를 내어 경애에게 고생 많았고 수업 잘 들었다는 소심한 말을 건넸다.

나는 갈등의 원인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을 하지 않았다. 길어진 시간만큼 오해는 불어나고 경애의 맘속에는 증오가 넘쳤을 수도 있을 것이다. 경애의 앙심이 누그러지고 내 마지막 인사에 조금은 화가 풀렸을 거란 상상도 착각인지 모르겠다. 교육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전 상사에게 연락을 했다. 오해를 푸는 지혜를 묻고 싶었지만 강이 불어나서 잠긴 디딤돌을 건너는 것처럼 그것 마저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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