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35년 전 아버지는 추수가 끝나면 삽을 드셨다. 겨울잠을 자려고 논바닥으로 들어간 미꾸라지를 잡기 위해서다. 하찮은 일 같지만 기술이 좋아서 운수 좋은 날은 쌀 한 가마니 값을 벌었다. 언 땅을 파서 손가락보다 굵은 미꾸라지가 꾸물꾸물 올라올 때의 기분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그때 아버지는 “옹골지다”는 말씀을 참 많이 하셨다. 고되기는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해서 농한기에 돈도 벌고 사 남매에게 가끔은 닭튀김도 먹일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버지는 동네에서 물고기를 잘 잡기로 유명했다.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명절에 내려온 외지 사람들이 천렵에 나서면 우리 집은 당연히 들러야 하는 곳이었다. 아버지의 투망이 거미줄처럼 퍼져 나가 팔뚝만 한 가물치를 들어 올리면 동행자들은 역시 최고라며 엄지를 세웠다. 아버지도 그 기분만은 놓치기 싫었던 것 같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지만 이것만은 내가 최고라는 자존감 같은 것이었을까! 나도 그 순간은 아버지와 하나가 됐다.
어려서 보고 배운 덕분에 나도 열 살 때부터 장마철이 되면 논고랑에서 족대로 미꾸라지를 잡았다. 그때는 비가 많이 오면 미꾸라지가 하늘에서 떨어진다고 할 정도였다. 팔 수도 있어서 쏠쏠한 용돈벌이가 됐다. 재미도 있고 돈도 쉽게 벌 수 있으니 고기를 잡는 선장이 되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이 꿈은 도랑에 미꾸라지가 조금씩 사라지면서 스쳐간 추억의 하나로 남았었다.
시간이 지나 수능시험을 앞둔 어느 날이었다. 선생님께서 해양 대학을 알려 주셨다. 배를 타면 외국에도 가고 돈도 많이 벌며 군대도 가지 않고 거기다 학비까지 싸다는 것이다.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미꾸라지를 잡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 꿈은 어선 선장이었지만 상선 기관사가 되면 배를 내려서 취업하기도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바다와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목포에 있는 해양대학교에 진학하고 4년간 바다와 선박을 배웠다. 그 당시 취업이 잘됐기 때문에 공부보다는 노는 데 열중했다. 졸업할 즈음 국제통화기금에서 구제금융을 받는 사태가 터졌다. 국가 경제가 휘청거리고 많은 사람이 직장을 잃었다. 그러나 나는 운 좋게도 어려움 없이 대기업 화물선을 탈 수 있었다.
하지만 바다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기관실에 처음 들어설 때부터 경주용 자동차 몇 배에 달하는 기계음과 45도에 육박하는 열기가 나를 주눅 들게 만들었다. 작업복은 항상 기름과 땀으로 범벅이 되고 가끔 오래된 기계가 고장이라도 나면 밤을 새워 고쳐야 했다. 선진국 선박 검사관의 세밀한 점검도 스트레스였다. 차라리 담배나 위스키를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인간적인 정이 그리워질 때도 있었다. 길게는 한 달 넘게 항해했고 반년 가량을 외국 항구로 떠돌았다. 겨울철 북극 항로를 건너다보면 왜 콜럼버스가 위대한지 절로 느껴진다. 산더미 같은 파도를 이삼일쯤 맞다 보면 방에 물건과 몸은 온전히 자연에 순응하게 된다. 배의 흔들림에 맞춰 바다와 하나 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래도 바다는 나를 품어 안았다. 힘들고 지루한 항해를 한다고 은하수와 별똥별의 불꽃놀이를 선사하고 적도를 지날 때면 찻잔에 담긴 홍차처럼 잔잔해서 흔들리는 마음을 가라앉게 했다. 날치나 거대한 고래도 동행을 허용했다. 결국에는 우리가 원하는 목적지로 인도했다.
승선 생활은 4년 정도로 마무리했다. 대책을 세워 놓지는 않았다. 결정은 쉬웠지만 육상이라고 다른 것은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진로를 정하지 못하고 일 년 넘게 방황했다. 그때 나를 다시 받아 준 곳도 바다였다. 그동안의 지식을 활용해 지금의 직업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직장 상사에게 소개받은 아내를 만나 가정을 이뤘다. 바다와 함께한 시간은 힘들었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이 된 것이다.
지금도 가끔은 승선 시절이 생각난다. 예전에는 악몽만 꿨지만 이제는 배 탈 때 행복했던 꿈을 꾸기도 한다. 앞으로 태평양과 적도를 항해하는 경험은 못 할 가능성이 크다. 그때 사진을 많이 찍어 놨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눈으로 볼 수 없기에 더 그리워할 수 있다고 위안을 삼아 본다.
우연히 만들어진 바다와의 인연은 벌써 22년이 됐다. 바다가 없는 농촌에서 태어났으나 삶의 절반을 바다와 살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바다와 동행할 것이다. 미꾸라지가 하늘에서 떨어질 만큼 많아지고 다시 한번 적도를 항해할 날도 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