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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 바다 Oct 01. 2019

시래깃국 생각나는 날

2019. 4. 13.


주말부부로 잠시 떨어져 살 때 가끔 가던 국밥집이 있었다. 시장에 있는 ‘엄니네’라는 작은 식당이었는데 시래깃국이 일품이었다. 풍성한 건더기에 들깨 가루와 묽은 된장이 어우러져 깊은 국물을 만들어 냈다. 없던 고향도 만들어야 할 맛이다. 한 숟가락씩 후후 불어 가며 깨끗이 비우면 온몸이 따뜻해진다. 믹스커피 한 잔을 들고 찬바람을 맞을 때 가슴 안에 남았던 열기가 온갖 시름과 함께 사라지며 상쾌해지는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싸늘한 날 먹어야 제맛이다.

시래깃국은 시골에서 자주 먹었다. 어머니는 겨울이 오기 전 김장하고 남은 무청을 처마에 말렸다. 칼바람과 강렬한 햇볕에 얼고 녹기를 수차례 반복하고 어머니의 정성이 더해지면 거칠면서도 부드러운 식감과 수수하지만 담백한 맛이 공존하게 된다. 40대가 된 내게 시래깃국은 식사의 의미를 넘어서 옛 추억을 소환하는 한 끼가 되었다.

내 고향은 학교가 있는 면 소재지에서 십 리나 떨어져 있었다. 버스도 자주 다니지 않아 학교에는 대부분 걷거나 자전거로 다녔다. 냇가를 따라 쉬지 않고 가면 40분쯤 걸리는데 십여 명이 되는 동네 친구들과 9년을 다녔다.

그 시절 초등학교에서는 학기가 시작되면 생활환경 조사라는 것을 했다. 선생님이 "냉장고 있는 집, 차 있는 집" 물어보면 손을 드는 방식이다. 친구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질문마다 손을 들거나 내렸다. '스카이 캐슬'처럼 모여 사는 환경이 비슷했서다. 부모님들은 농사를 지었고 전형적인 시골집에 살았다. 이런 공통점 때문이지 성격과 좋아하는 것도 비슷해 싸우지도 않고 잘 어울렸다.

학원과 컴퓨터 게임도 없었고 선행 학습도 없어서 수업이 끝나면 함께 노는 법을 배워야 했다. 딱지 따먹기와 구슬치기를 하고 솔방울을 수류탄 삼아 총싸움을 했다. 땀이 나면 냇가에 가서 물장구를 치고, 동자개 같은 물고기를 잡기도 했다. 실컷 놀다 배가 고파지면 우리들끼리 허기를 채웠다. 봄에는 논두렁에 삐비(삘기의 방언), 여름이 오면 둠벙에 연밥, 가을이 되면 쥐 밤, 겨울에는 산속에 불을 피우고 고구마를 구워 먹었다. 중학생이 되어서는 양지바른 묘지 뒤에서 쌈치기와 화투를 치며 냉혹한 승부를 체험해 보고 부모님과 선생님에게 걸려 몽둥이로 맞기도 했다.

지금은 각지에 떨어져 명절 때가 돼야 한 번씩 보는 사이가 됐다. 전화도 자주 하지 못하고 그 시절 기억도 이제는 흐릿해졌다. 늘어나는 흰머리와 이마의 주름, 뚝 튀어나온 배가 세월의 흔적을 증명할 뿐이다. 하지만 옛이야기만 하면 모두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친구들은 행복했던 일을 추억하고 슬펐던 일도 즐거웠던 사건으로 승화시킨다.


불알친구들이 좋은 이유는 옛 추억을 함께해서다. 많은 것을 바라지도 않는다. 가끔 전화가 오면 반갑지만 안 한다고 해서 서운해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편하고 더 그리울 때도 있다.


시래깃국은 화려한 음시은 아니지만 따뜻함과 그리움을 준다. 자주 먹어도 질지지 않고 가격도 부담이 없다. 내가 사는 도시에서는 쉽게 맛 볼 수 없어 어머니는 아들에게 국밥을 주려고 시래기를 얼려 놓으신다. 친구들과 함께한 추억은 멈출 수도 얼릴 수도 없다. 어머니가 해주신 뜨거운 시래깃국에 친구들과 소주 한잔 하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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