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질은 못 묵는거다.” 남자애는 그렇게 말하며 먹는 법을 가르쳐 주듯 비파의 껍질을 벗겼다. 비파는 딱 한입에 찼고, 그 달고 연한 맛은 뭐라고 형언할 수가 없었다. 그런 맛있는 열매를 장독대에 있는 나무에서 마음대로 따먹을 수 있는 남자애가 더없이 부러워졌다. (조정래,《태백산맥》, 1권, 해냄, 27쪽.)
하섭과 소화가 그려집니다. 둘의 정이 느껴지고, 침이 고입니다. 《태백산맥》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입니다. 제가 사는 목포의 시목은 비파나무입니다. 그래선지 다른 지역에 비해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스무 살까지 자란 정읍에서는 보지 못한 나무입니다. 30대 중반에 비파를 처음 맛봤습니다. 살구 비슷하게 생긴 열매는 볼품이 없었습니다. 맛은 다릅니다. 상큼하면서도 담백하고 과즙도 풍부합니다. 인심 좋은 남도인을 닮았다고 할까요. 비파가 황금빛을 띠는 6월이 되면 그 맛이 그립습니다. 이제는 하섭과 소화의 애틋함도 함께 생각이 나겠지요.
책은 8월 초부터 시작해 이제 6권을 읽고 있습니다. 처갓집과 회사에는 1권만 있었습니다. 누군가 읽으려다 포기한 것 같습니다. 저도 몇 번 만에 다시 도전하는 것입니다. 10권이나 되니 부담이 되기도 했습니다. 마음을 먹으니 한 권 한 권 금방 읽힙니다. 책 읽을 시간이 기다려집니다. 활자는 읽는 순간 머릿속에 영상처럼 떠오릅니다. 마치 1948년 벌교 한복판에 서 있는 듯합니다. 읽기 잘 했습니다. 국민의 약 90퍼센트가 읽었다고 하니, 이제야 읽기 시작한 제가 초라해집니다.
사건들은 평범하지 않지만 인물들은 우리 이웃이었습니다. 선과 악으로 나뉘지 않습니다. 어떤 것이 옳은지 결정을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가치관이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를 뿐입니다. 해방 이후 시대적 상황과 여순사건 같은 역사적 사실도 조금 더 깊게 알게 되었습니다. 작가님은 소설을 쓰면서 현장 조사와 취재를 많이 했다고 하셨습니다. 그 노력과 사실성이 '태백산맥'을 민족의 대표 문학으로 우뚝 서게 만든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갈등은 계속됩니다. 그시절 벌교 주민들이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 총칼을 겨눴다면 현재는 세대, 성별, 지역, 정파로 나뉘어 말과 글로 혐오하고 증오로 서로를 겨눕니다. 제 정치적 성향은 왼쪽에 가깝습니다. 동학혁명이 일어난 정읍에서 어르신들의 술자리에 어김없이 오르던 정치 이야기를 듣고 자라서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공산주의를 지지하지도 빨치산 염상진을 영웅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계엄사령관인 심재모의 행동이 더 공감됩니다. 진보를 좀 더 지지하는 이유는 내가 세금을 조금 더 내고 집값이 떨어지는 피해를 보더라도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에 공감할 뿐입니다. 보수를 지지하는 분들도 나름대로의 타당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자신과 같은 의견만을 들으려 합니다.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고 듣기 좋은 말만 골라 듣다 보니 획일화됩니다. 의견이 다르면 빨갱이와 토착 왜구로 편을 가릅니다. 저 또한 다른 생각들을 많이 들어 보려고 노력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이런 때 서민용 선생님 같은 분이 나타나 다른 의견을 포용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지혜를 가르쳐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작가님도 그 역할을 해 주셔야 합니다.
《아리랑》, 《태백산맥》, 《한강》을 읽으면 우리나라 근현대사 100년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제야 《태백산맥》이지만 나머지도 읽어 볼 생각입니다. 근현대사에 대한 역사적 호기심과 현대사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알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내내 건강하셔서 좋은 작품 많이 써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