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해양수산부 ‘해양 문학 독서 대전’에 참가했었다. 바다 관련 추천 도서 중 한 권을 읽고 독후감을 내는 대회였다. 연초부터 책도 많이 읽고 독서 토론에도 나가던 터라 해 볼 만했다. 동료들에게 글 잘 쓴다는 말을 가끔 들어 자신감도 있었다. 먼저 책을 골랐다. ‘사피엔스’를 재밌게 읽어 비슷한 내용의 ‘문명과 바다’를 선택했다. 바다의 관점에서 문명 발달을 살펴본 책이다. 배를 탔던 내게 딱 맞았다. 책도 잘 읽혔고 독후감도 잘 써졌다. 상을 탈 것 같은 기대감이 점점 커졌다. 상금으로 직원들에게 밥을 내고 필요한 물건을 살 구체적인 계획도 세웠다. 독후감을 제출하고 상 타는 상상을 수십 번 했다.
드디어 그 날이 왔다. 수상자 발표 공문을 열어 본다. 아기가 자는 방의 문을 여는 듯 조심스럽다. 위쪽부터 찾아본다. 보이지 않는다. 아래까지 꼼꼼히 찾아보지만 마찬가지다. 김칫국만 시원하게 몇 사발 들이킨 것이다. 직장 후배들이 독후감 낸 것을 안 터라 상을 탔는지 물어 볼까 민망했다. 다행히 관심은 없었다. 나름 잘 썼다고 생각했는데 어이가 없었다. 집사람에게 상을 탈 것 같다고 자랑한 것도 창피했다.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은 사람보다 딱 한 권만 읽은 사람이 더 무섭다.’고 한다. 글도 마찬가지다. 글쓰기 책 몇 권 읽고 알량한 기교로 글을 쓰며 보통 이상이라고 생각했었다. 이것이 착각이라는 것을 이훈 교수님에게 글 쓰는 방법을 배우면서 알게 됐다.
글쓰기를 배우려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논리 정연하게 말을 잘하고 싶었고, 작년에 못 먹은 ‘떡’을 먹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래서 ‘일상의 글쓰기’ 과정을 신청했다. 수업은 매주 글감으로 수강생들이 글을 쓰고 교수님이 교정해 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글 쓰는 과정은 귀찮고 어렵다. 높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 글을 쓰다 보면 힘들어도 정상에 오른 것처럼 여러 즐거움을 얻는다.
먼저 한글 사전 찾는 재미다. 띄어쓰기 지적하는 상사들을 꼰대
라고 생각했었다. 글은 의미만 통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생각은 카톡방에서도 띄어쓰기를 지적하는 꼰대 교수님을 만나면서 바뀌었다. 글쓰기 반 단체 카톡방은 대화가 없다. 지적을 피하려면 카톡이나 카페에 글을 쓰면서도 거듭 고민해야 한다. 처음에는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한 잔’과 ‘한잔’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 말이다. 띄어쓰기에 따라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그래서 정확히 써야 한다. 이제는 조금 애매모호하면 사전을 찾는다.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등산 장비와 같다. 없어도 산에 오를 수는 있지만 사고 위험이 높아진다. 좋은 장비를 갖추어야 기분 좋고 안전하다. 글쓰기도 그렇다.
다음은 추억을 공유하는 즐거움이다. 주마다 한 편씩 글을 쓰다 보니 벌써 11편이다. 계속 쌓인다. 그 글은 페이스북에 올린다. 어머니에 대해 쓴 글을 보며 연락이 잘 없던 첫째 여동생 전화가 왔다. 글을 잘 쓰는지 몰랐다며 엄마에게 잘해야겠다고 한다. 아들도 독자가 되었다. 아빠의 옛 시절이 궁금한가 보다. 글쓰기는 지나간 장소의 풍경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구체적으로 기록할 수 있다. 내 일상을 글로 쓸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서 유일하다. 글과 사진의 다른 점이다.
마지막으로 창작의 기쁨이다. 매번 글감을 받으면 머리가 아프다. 내용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계속 생각해야 한다. 도저히 못 쓸 것 같아 포기하고 싶은 적도 있다. 마감일이 있어 힘을 내어본다. 몇 번을 고친다. 그러다 보면 내가 쓴 글이지만 참 잘 썼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미소가 지어진다. 힘들게 정상에 올라 멋진 풍경을 보고 땀을 닦으며 힘껏 소리치는 기분이다. 글을 쓰기 전까지 느껴보지 못한 만족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