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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 바다 Oct 01. 2019

음치가 배워야 하는 것

2019. 9. 21.



2017년 5월 어느 날, 보라카이 밤공기는 상쾌했다. 뜨거운 햇빛을 머금은 여행객들은 시원한 맥주로 여정의 아쉬움을 달래는 듯했다. 다양한 언어와 뒤섞인 동남아 특유의 향기는 이방인을 더 취하게 한다. 순간 들려온 경쾌한 음악에 온 신경이 집중되어 옛 추억이 가맣게 떠올랐다.

약 17년 전, 40여 일간의 긴 항해 끝에 콜롬비아 작은 항구에 입항했다. 일주일간의 정박이었다. 흙만 봐도 설레는 마음을 뒤로하고 낮에는 운항 중에 못 하는 기관 정비를 해야 했다. 밤에도 교대로 당직을 서야 하니 육지에 내릴 수 있는 시간은 더 귀했다. 허락된 자유 안에서도 공간의 이동은 제한된다. 치안이 불안하니 갈 수 있는 곳은 경호원을 고용한 술집뿐이었다. 현지인들은 남미의 강렬한 태양과 어울리는 박자에 맞춰 자유분방함을 만끽하고 있었다. 젊은 선원들은 술집 아가씨들과 세뇨리타, 아미고와 같은 짧은 스페인어를 섞어 가며 손짓, 발짓으로 대화했다. 의사소통은 부정확했지만 웃음은 끊이지 않았다. 배의 좁은 공간에서 느낄 수 없는 분위기와 정에 빠지다 보니 후유증은 오래갔다. 그 후로 라틴 음악이 흘러나오면 그 시절 그곳이 생각나곤 했다.

한국에 도착해서 그 노래를 찾았다. '신나는 남미 음악'을 검색하여 어렵지 않게 루이스폰시의 '데스파시토(아주 조금씩이라는 스페인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유튜브 최대 조회수 1위다. 세계 인구가 77억 명이니 62억 회의 조회는 대단한 기록이다. 인종과 세대를 초월해 인기를 얻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도 일이 잘 안 풀리면 한 번씩 듣곤 한다.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주고 옛 기억까지 되찾아 주는 그가 부러웠다. 노래 한 곡 제대로 못 하는 나로서는 더 그랬다.

노래가 두려워지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3학년 즈음이었다. 오르간 반주에 맞추어 합창을 했다. 선생님은 갑자기 누가 음이 틀리냐며 화를 냈다. 가슴이 콩닥거렸다. 순간 모든 아이들이 나를 쳐다본다. 변명의 기회도 필요없이 꾸중을 들어야 했다. 그런 일이 한두 번 더 반복됐다. 그 뒤로 붕어처럼 입만 뻐끔거렸다. 고등학교 시절 또 다른 고통이 시작됐다. 노래방이 생긴 것이다. 단체 소개팅이나 친구들이 모이면 도살장의 소처럼 끌려가곤 했는데, 내가 노래하면 선생님 여러 명이 앉아 음을 지적하고 비웃는 것만 같았다. 성인이 되어서는 나름 즐기는 방법을 알았다. 신나게 춤을 추며 놀거나 가볍게 따라 부르는 것이었다. 그런다고 노래하는 것이 좋아진 것은 아니었다. 핑계를 대고 빠져나오거나 도망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 선생님을 원망하지는 않는다. 음치, 박치, 고음 불가까지 다 갖춘 아버지 유전자를 조금 탓할 뿐이다. 몇 달 전 6학년 아들은 반 아이들과 팝송 '위 아더 월드' 영상을 만든다고 했다. 연습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웃기기도 하고 아들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속없이 노래를 못한다고 놀리기도 했다. 며칠 후 유튜브 영상을 보고 창피해졌다. 아이들은 자기가 맡은 소절의 노래를 최선을 다해 불렀다. 누가 잘하고 못하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노력하는 모습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었다.

지금도 데스파시토 영상에는 다양한 언어의 댓글이 달린다. 그러나 내가 부러워해야 할 것은 그의 노래 실력과 인기가 아니었다. 자신의 단점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역할을 다하는 아이들의 열정과 용기, 실력으로 차별하지 않고 동등한 분량을 배분한 담임 선생님의 격려와 배려심이었다.

참 다행히도 회식 문화가 바뀌어 예전처럼 노래를 부를 일은 많이 없어졌다. 그래도 나만의 18번을 만들어 보고 싶다. 아이들의 지혜를 배워 '아주 조금씩'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가능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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