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평 용천사 계곡에는 금방 뿌려놓은 핏빛 같은 선홍의 꽃무릇이 유독 많았다.
그 새빨간 꽃무릇들은 사람들의 마음까지 붉게 물들였다.
핏빛 선연한 그 꽃무릇들은 붉은 볏처럼 돋았으나 이제는 져야 할 때란 걸 알고 있었다.
경사가 급한 계곡을 올라가면서 보면 꽃무릇은 곧잘 하늘과 겹쳐져 보이고는 했다.
해맑게 푸른 가을 하늘과 어우러진 새빨간 꽃무릇의 투명함은 흡사 백설 위에 점점이 찍힌 피의 선연함이었다.
그러나 용천사의 꽃무릇이 유명한 것은 꽃무릇이 고와서만이 아니었다.
꽃무릇은 가지가지 형상의 바위와 녹음이 가득한 연륜 있는 도토리나무들과 조화를 이루어 그 곱기가 한층 돋보였던 것이다.
그렇게 또 가을의 하루는 꽃무릇과 함께 져 간다.
(조정래,《태백산맥》, 10권, 해냄, 8쪽.) 피아골 단풍을 묘사한 것을 함평 용천사의 꽃무릇으로 대신해 보았습니다. 용천사 계곡도 빨치산이 많이 죽어간 곳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