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0일부터 11월 14일까지 대만 여행을 다녀왔다. 싼 항공권에 혹해 출발 3일 전에 급작스럽게 계획을 잡았다. 집사람과 유명 관광지 위주로 갈 곳을 정했는데, 대만 국립 고궁 박물관은 꼭 가 보자고 했다. 세계 4대 박물관 중 하나로 60만 점이 넘는 소장품을 보유하고 있다. 그 가치가 대단할뿐더러 먼저 다녀온 동료 추천도 있었다.
여행 4일째, 박물관 개장 시간인 8시 30분에 맞추어 들어갔다. 평일이라 관람객이 적어 여유로웠다. 전시품 하나하나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1500년대 그림 속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고 계곡의 물은 당장이라도 흐를 듯했다. 서예 작품은 서예가의 숨결은 물론 손끝의 힘마저 느껴졌다. 박물관에서 가장 유명한 취옥백채(옥으로 만든 배추 모양의 형상)는 영롱한 색에 한 번, 귀뚜라미 조각의 정교함에 다시 한 번 놀라게 했다. 중국은 이것을 주면 대만의 유엔 가입을 승인해 주겠다고 제안했는데, 대만은 중국 본토를 줘도 안 바꾼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다 돌아볼 때쯤 관람객이 밀려들었다. 그중에는 수학여행 온 일본 중학생도 있었다. 여학생들은 스마트폰으로 사진도 찍고 안내판의 설명을 열심히 적기도 했다. 그 반대로 남학생 열 명 정도는 박물관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전깃줄에 앉은 제비같이 고개를 숙인 채 스마트폰에 빠져 있었다. 가질 수 없는 진귀한 보물보다는 게임 속 아이템을 얻는 것이 더 중요한 듯했다. 좋은 것들이 많으니 구경하면 좋으련만 이곳까지 와서 그러는 게 한심스럽고 안쓰러웠다. 그들을 보니 여행 오기 전 아들을 크게 꾸짖었던 게 떠올랐다.
며칠 전 일이다. 집사람은 또 거절했다.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은 저녁 먹는 내내 스마트폰 때문에 울먹였다. 요즘 그 횟수가 부쩍 늘었다. 이제 반에서 자기만 없단다. 반톡(학급 단체 카카오톡 방)도 엄마 전화로 확인한다. 졸업 전에 선생님, 친구들과 연락처를 주고받으려면 이제는 꼭 있어야 한단다. 결정권을 쥐고 있는 아내는 확고했다. 고등학생이 되면 사 주겠단다. 그 시기가 늦을수록 좋다는 신념에는 공감하지만 그 말은 억지 같았다. 이제는 때가 되긴 했다.
여행 가는 날 아침에도 아들은 뽀로통했다. 이유는 스마트폰이다. 여행에 따라 가지 못하는 것부터 모든 것에 심술을 부렸다. 동생을 건드리며 싸우는 것에 화가 나 결국 호되게 나무랐다. 눈물이 한가득 고여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았다. 이미 나와 버린 말과 감정은 주워 담을 수 없었다. 비행기를 타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아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기 때문이다. 나도 어린 시절 게임기와 삐삐 때문에 울기도 하고 단식도 했다. 결국 모든 것을 다 얻어냈다. 아들은 그에 비해 양반이다. 이런 일로 보챈 적이 없었다. 이전까지 스마트폰을 갖고 싶다는 말도 아주 가끔 했다. 이제는 자기만 없다 보니 소외받는 기분도 들었을 것 같아 동정이 됐다.
물론 걱정이 되긴 한다. 나도 절제가 안 될 때가 있어서다. 손에 스마트폰이 없으면 불안하다. 게임에 빠진 적도 있었다. 요즘은 유튜브도 자주 본다. 그곳은 혐오와 증오, 욕설이 넘쳐난다. 유해 영상물도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렇다고 나쁜 것만은 아니다. 사진 찍고, 음악 듣고, 사전도 볼 수 있으니 이보다 편할 순 없다. 스마트폰이 없었다면 해외 자유 여행은 상상도 못 했을 것 같다. 구더기 무섭다고 장을 담그지 않을 순 없지 않은가.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아내에게 이제는 사 주자고 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이유를 설명했다. 아내는 듣기만 했다. 저녁 늦게 공항에 도착해 집에 전화하니 아들이 받았다. 첫마디는 "엄마, 스마트폰 사 주면 안 돼요"였다. 아내는 그만 하라며 화를 냈다. 그날 저녁은 나가서 먹기로 했다. 차를 타려고 내려온 아들의 볼은 화가 난 복어 같았다. 차에 탄 아들에게 집사람은 약속했다. "방학 전인 12월 19일까지는 스마트폰 사 줄게"라고. 아내의 신념과 현실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은 것이 그날 같았다. 아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그날 이후 우리 집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