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다 와 갈 무렵, 도로에 떨어져 있는 10원짜리 다섯 개가 보였다. 누군가 흘린 건지, 버린 건지 애매하다. 가치는 적지만 그래도 돈 아닌가. 전날은 지나쳤지만 자전거를 세워 놓고 하나하나 주웠다. 오랜만에 만져 보는 동전이 너무 작고 가벼워서 새삼스럽다. 그것을 책상에 올려놓고 사진을 찍었다. 어떤 사람에게는 하찮은 존재일 수 있겠지만 내겐 다르다. 새로운 글감이다. 일상에 관심을 기울이면 이야깃거리가 떠오른다. 그러면 하나씩 써 나간다. 글쓰기를 배우면서 생긴 습관이다.
오래 전 고향 마을의 작은 점방이다. 주인 할머니는 10원을 주면 콩 과자(콩 모양으로 생긴 캐러멜) 네 개를 쥐여 주었다. 하나를 입에 넣고 오물거리면 진한 단맛이 입안 가득 퍼진다. 너무 달아 머리가 아플 정도다. 십 원만 생겨도 발걸음은 어느새 그곳을 향했다. 50원이면 최고의 인기 과자 뽀빠이를 샀다. 봉지를 뜯으면서부터 갈등이 생긴다. 별 모양의 사탕부터 먹을지 과자부터 먹을지다. 짜장면이냐 짬뽕이냐처럼 행복한 고민이지만 나름 심각했다.
다음은 돌아가신 할머니다. 서울 큰집에 사셨는데, 막내아들의 장남이던 나를 유독 예뻐하셨다. 방학에 놀러 갔다가 내려올 때면 만 원짜리 한두 장을 주셨다. 한번은 중학생인 내게 70원을 주면서 용돈으로 쓰라고 했다. 할머니도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는 못했다. 지금도 옛날 동전을 보면 그때 뭉클했던 감정이 떠오르곤 한다. 줍지도 않고, 어디 있는지 찾지도, 눈길도 주지 않는 10원짜리처럼, 일상의 기억을 기록하지 않으면 의미 없이 잊혀 버린 흔적이 된다. 글을 써야 하는 이유다.
올해 초부터 목포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글쓰기를 배웠다. 교수님이 주신 글감으로 한 주 동안 글을 쓴다. 글은 마감이 쓴다고 했던가? 과제를 받은 화요일 저녁부터 글 집을 짓는다. 잠들기 전 안방 천장은 원고지가 된다. 어떤 주제로 지을지 결정되면 설계도를 그린다. 차곡차곡 이야기를 채워 나간다. 일요일까지 계속 고친다. 교수님의 손을 거쳐야 더 완벽해진다. 그래도 작가는 나다. 내 글을 보고 웃거나 잘 썼다고 칭찬해 주는 독자를 만나면 창작의 희열을 느낀다.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이래야 글벗과 가족뿐이지만 그래도 즐겁다. 글 쓰는 기쁨이다.
1학기 때 띄어쓰기도 몰랐던 것에 비하면 이제는 비문과 번역 투까지 찾아내고 대충은 고칠 수 있다. 책 읽다가 그런 문장이 보이면 눈에 거슬릴 정도다. 다 교수님 덕분이다. 2학기가 되면서 다짐한 것이 있다. 좋은 글은 못 쓰더라도 숙제는 하자는 것이다. 몇 번의 고비가 있었지만 이번 글로 그 약속은 지켰다. 이번 학기에도 마음 따뜻한 학우들을 만나 행복했다. 매주 올라오는 글 읽는 것도 재미있다. 어느덧 이번 주가 마지막 수업이다. 그날 이후 가슴 한구석이 허전할 것 같다. 봄이 되면 꽃은 피고 우리는 다시 만날 거라고 위안해 본다.
오늘은 걸어서 출근했다. 대충 봤던 가로수 열매가 유난히 빨갛다. 이름도 궁금하다. 직원의 이야기도 귀 기울인다. 자녀의 행동도 더 유심히 본다. 강연을 듣거나 여행하면서도 마찬가지다. 일상의 모든 것들이 글감이 된다. 글을 쓰려면 가까이 그리고 자세히 봐야 한다. 제대로 보면 아름답지 않을 수 없다. 글 쓰며 얻는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