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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 바다 Apr 28. 2020

코로나로 얻은 것

코로나로 얻은 것

2020년 2월 초, 예상대로 발령장에 이름이 있었다. 마음에 준비를 해서 인지 홀가분했다. 가족과 함께 갈까 잠시 갈등했지만 답은 정해져 있었다. 이사 가면 예쁜 방이 생길지 모른다는 기대감에 막내딸만 혹했지 나머지 가족은 고민조차 하지 않았다. 발령 전날 업무를 인수받으려고 서둘렀다. 이른 새벽이라 아이들은 잠들어 있었다. 따뜻한 커피와 미처 싣지 못한 짐을 챙겨 집을 나섰다. 앞날을 상상하고 고민하다 보니 4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인천 생활은 다시 시작됐다.

2015년부터 1년 반 정도 인천에서 근무했었다. 조직은 부침을 겪으며 세종에 내려갔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인천에 정착하게 됐다. 나는 목포에 내려온 지 2년 만에 같은 과로 돌아왔다. 대부분 함께 일해서 인지 낯설지 않았다. 한 동료는 내게 좀 긴 출장 다녀온 것 같다고 농담을 던졌다. 첫 발령에는 아내와 아이들 생각에 창밖만 봐도 눈물이 글썽거렸는데, 그 기억은 오래전 추억에 불과했다.

인천에서는 점심을 마치면 팟캐스트를 들으며 공원을 산책한다. 코로나 뉴스가 하루가 다르게 많아졌다. 중국은 공장을 폐쇄하고 우한 봉쇄령까지 내렸다고 한다. 다른 나라 이야기라고 여겼다. 2월 중순 우리나라에서 31번째 코로나 확진자가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직장에서부터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작됐다. 출근하면서 마스크부터 챙긴다. 회사에서는 매일 수시로 체온을 점검한다. 식사는 한 줄로 앉아하고 대화는 금지됐다. 코로나 재난문자가 울리면 확진자와 동선은 겹치지 않는지부터 확인한다. 몸살 기운이라도 있으면 불안해진다. 손을 씻는 것도 자주 하게 되고,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워진다. 병에 걸리는 것도 무섭지만 더 두려운 것은 회사에서 1번 확진자가 되면 받을 시선이다.

인천에서 보내는 주말도 익숙해졌다. 여기저기 다닐 수 없으니 대부분 관사에서 지낸다. 쉬는 날에는 꼭 늦잠을 자겠다고 다짐해 보지만 어김없이 6시가 되면 눈이 떠진다. 아침은 삶은 계란 두 개에 두유다. 기계로 삶으니 맛이 크게 다르지 않지만 노른자가 반숙으로 익어 조금 고소하면 흐뭇해진다.

아침에 커피를 마시며 몇 주전 사놓은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를 읽었다. 쉽게 감정이입이 된다. 페스트는 코로나로, 사건의 배경인 해안 도시 오랑은 인천이 된다. 관사에 많이 사는 길고양이도 책에 더욱 빠지게 한다. 병을 몰아낸다고 종교 행사를 하며 오히려 더 확산시키는 현재와 비슷한 이야기가 많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취재차 오랑에 들렀다가 고립된 랑베르와 의사 리유가 나눈 대화다. 랑베르는 오랑시에선 ‘이방인’이다. 도시의 시련은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다. 빨리 도시를 탈출해 사랑하는 여인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게 최대 목표다. 그는 리유에게 나는 이 고장 사람이 아니라고 항변한다. 리유는 “지금부터 선생은 이 고장 사람입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말입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창밖에 들어오는 햇빛이 따사해 조금 걷고 싶어 졌다. 인천의 악명 높던 공기도 목포만큼 좋아졌다. 매년 미세먼지로 뒤덮였던 봄날의 하늘은 유난히 파랗다. 코로나는 지구에게 잠시 '쉼'을 선물한 것일까? 골목을 따라 걷다 보니 1937년 지어졌다는 답동 성당이 나타난다. 정문에는 코로나로 미사를 중단한다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길거리를 걷는 사람들 대부분이 마스크를 썼다. <<페스트>>와는 다르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고장" 사람이 되어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고 있다. 그 의지만큼이나 우리나라는 방역 모범국가가 됐고 확진자수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

이번 주말은 목포에서 보냈다. 인천 가는 버스는 코로나 이후 승객이 많이 줄었다. 배차 시간도 매일 달라진다. 자주 타던 18시 30분 우등 고속은 안 다닐 때가 많아졌다. 어쩔 수 없이 막차가 되버린 16시 30분 일반 버스를 탄다. 좌석이 조금은 불편하지만 가격은 저렴하다. 해가 떠있는 두세 시간은 책을 읽거나 글도 쓸 수 있다. 인천에 2시간 먼저 도착하니 여유롭게 다음 날을 준비할 수도 있다. 일반 버스는 불편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장점도 많다. 코로나 때문에 얻은 소소한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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