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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 바다 May 09. 2020

내 게임 인생

내 게임 인생

창밖에 두 개의 달이 떴다. 야나체크의 관현악 <신포니에타>가 골방에 울려 퍼진다. 곧 놀이터에 첫사랑 아오마메가 올 것 같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를 읽다 보면 어느새 나는 주인공 덴고가 되어 간다. 하루키 소설의 매력이다. 그의 글은 읽기도 쉬울뿐더러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오가는 즐거움을 준다. 마치 비디오 게임을 하는 기분이다.

유치해 보일지 모르겠다. 중년 남자의 취미가 게임이라면 말이다. 내가 오락을 처음 해본 건 여섯 살 무렵이었다. 시골집에서 읍내까지는 버스로 한 시간 정도 걸렸다. 어머니는 장에 갈 때 사 남매 중 한 명을 데려갔다. 물론 장남이자 외아들인 내가 갈 확률이 높았다. 장을 보고 버스 시간이 남아서 들어간 곳이 정류장 옆 오락실이었다. 한 판이 이삼 분이면 끝났지만 그 잔상은 지금도 생생하다. 어머니가 '악의 구렁텅이'로 나를 떠민 것일까? 그때부터 내 게임 사랑은 시작됐다.

초등학교 방학이 되면 대부분 서울 큰집에서 지냈다. 할머니가 계셨고 우리 집과는 다르게 남동생들도 있어서다. 장사하던 큰어머니는 매일 용돈으로 삼백 원을 줬다. 그 쓰임새는 거의 비슷했다. 100원으로는 매콤하면서도 달달한 컵 떡볶이를 먹었다. 나머지는 예상대로다. 사촌동생 기열이는 동네에서 알아주던 실력자였다. 50원이면 이삼십 분은 기본이었다. '보글보글', '테트리스', '더블 드래건' 등 못하는 게임이 없었다. 오락실 주인에게는 경계 대상이었지만 우리에게는 위기에 빠지면 나타나는 영웅이었다. 좋았던 추억만 있던 건 아니다. 착한 깡패를 만나 겨우 차비만 얻었던 일화는 쓴웃음을 짓게 한다.

내 게임 인생에 한 획을 그은 건 대학 2학년이던 1996년, 소니(SONY) 플레이스테이션 1을 만나면 서다. 후배는 돈이 급하게 필요하다며 내 것을 사겠냐고 물었다. 마침 여름방학도 되고 싸기도 해서 사 버렸다. 텔레비전에 연결하고 게임기의 전원을 켜자 소니 로고와 함께 지금 들어도 가슴 뛰는 시작 음이 울린다. 오락실과는 다른 게임 세상이 열린다는 신호음 같다. 헬리콥터 조종사가 돼 임무를 마치려고 일어 사전을 찾아가며 날을 세웠다. 친구 자취방에 모여 위닝일레븐(축구 게임)을 하며 축구 전문가가 돼 갔다. 취업하고 플레이스테이션 2를 사고 결혼하고 플레이스테이션 3를 얻었다. 나이가 들면서 짜장면이 그렇든 게임도 안 당겼다.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시간도 없어졌고 게임이 어려워져 스트레스만 받았다. 자연스레 멀어졌다.

다시 게임을 손댄 건 이 년 전이었다. 동료가 출장지 숙소에 플레이스테이션 4를 가져왔다. 최신 위닝일레븐이었다. 감각은 살아있었다. 종종 이기기까지 했다. 축구를 좋아하는 아들이 생각났다. 위닝일레븐을 하는 아재들의 꿈은 자녀와 함께 즐기는 것이다. 나도 그때 어머니처럼 아들을 그 구렁텅이로 밀어 넣은 것일까? 중고 게임기를 샀다. 아들은 가끔 아내에게 혼이 나긴 하지만 적정 수준을 지킨다. 다른 게임도 많은데 유독 축구만 좋아한다. 부자가 웃고 즐기는 데 이만한 것이 없다. 이제는 아들 실력이 늘어 내가 질 때가 많아졌다.

한 달 전 직장 동료가 텔레비전을 줬다. 버튼은 눌러지지 않고 받침대는 흔들거리지만 화면은 크고 깨끗해서 관사에서 쓰기 충분했다. 공중파라도 볼 요량이었지만 채널이 잡히지 않았다. 즐겨보는 프로그램도 없어 방구석에 팽개쳐 두었다.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중고 거래 어플인 ‘당근 마켓’을 검색했다. 일주일 고민 끝에 또 하나의 플레이스테이션을 사고 말았다. ‘어쌔신 오디세이’도 샀다. 이 게임은 신종 코로나로 임시 폐쇄된 캐나다의 한 고등학교가 수행여행 대체제로 사용했을 만큼 현실적이다. 나는 주인공이 되어 말을 타고 적을 무찌른다. 바다나 산을 탐험하고 사냥도 한다.

사실 관사에서는 그 이후 한 번밖에 하지 않았다. 나이가 들다 보니 하루키나 김영하의 책을 읽는 게 더 좋다. 늦게 일을 마치고 관사에 들어오면 예전과 다르게 포근하다. 곁에만 있어도 좋은 오랜 친구가 나를 기다리는 것 같다. 40대에게 게임이란 부끄러운 취미일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 그럴 것 같다. 하지만 영원히 함께하고 싶다. 책보다는 게임으로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오가는 것이 더 즐거울 때도 있다. 가끔은 짜장면이 먹고 싶을 때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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