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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 바다 May 26. 2020

글쓰기 모임

글쓰기 모임

화요일 저녁이 되면, 나는 글감을 찾아 떠나는 항해자가 된다. 목적지는 어린 시절 막걸리 심부름을 하던 시골이나, 청년 시절 외로움에 사무쳐 별을 바라보던 적도가 된다. 때로는 <페스트>의 오랑처럼 코로나가 퍼져 가는 현재의 인천이 되기도 한다. 갈 곳이 정해지면 해도를 그리듯 차근차근 글을 써 간다.

농무에 둘러싸인 것처럼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할 때도 있다. 한 문장 쓰는 데 며칠이 걸리기도 한다. 오랜 기억을 끄집어내야 하면 더 그렇다. 산책하거나 운전하면서도 어떻게 풀어 갈지 고민한다. 밥을 먹거나 자기 전에도 마찬가지다. 쓰고 지우기를 반복한다. 글은 머리가 아니라 엉덩이가 쓴다고 했던가? 시간이 지나면 안개는 걷히고 해가 뜨듯 토요일쯤이면 글은 모양새를 갖춰 간다. 이렇게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는 힘의 원천은 '마감'이다. 꾸준히 쓰려면 마감이 있는 글쓰기 수업보다 좋은 게 없다.

우리는 매주 화요일 인터넷 줌(ZOOM)으로 만난다. 평생교육원에 있던 '일상의 글쓰기'가 코로나로 없어지고, 교수님이 재능 기부를 해서 만들어진 수업이다. 나는 올해 인천으로 발령이나 글쓰기를 포기할 뻔했는데, 이 덕에 매주 한 편씩 글을 써 낸다.

우리 회원이 정확히 몇 명인지는 모른다. 단체 카톡방에는 25명이 있지만 열 명 남짓만 글을 쓴다. 수업은 우리들의 글로 진행된다. 맞춤법부터 비문까지 꼼꼼하게 고쳐간다. 삶의 지혜를 배우는 것은 덤이다. 교수님은 모든 실수를 잡아낸다. 심지어 카톡 대화의 띄어쓰기조차 그냥 넘기지 못한다. 수업에서 혼나지 않으려면 월요일 오전까지는 계속 고쳐야 한다. 보는 장소나 방법을 달리하면 틀린 글이 튀어나온다. 다음날 보면 더 좋은 문장이 떠오르기도 한다. 보면 볼수록 글은 완벽해진다. 먼바다로 나가려면 작은 실수도 없어야 한다. 준비가 철저할수록 안전해진다. 선장은 그 진리가 선원들의 몸에 배게 한다. 훌륭한 뱃사람이 되려면 유능한 선장을 만나야 하는 것처럼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회원 중 나는 유일한 남자이자 막내다. 주말이 되면 카페에 많이 들어가 본다. 글벗들의 새글이 올라와서다. 그 글들은 사람 향기가 나서 좋다. 어려운 시절의 감정을 표현하거나 시골 풍경을 묘사한 문장을 보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쇠고기 장사 이야기를 읽으며 군침이 돌기도 하고, 선생님이란 직업의 어려움도 이해하게 된다. 교수님은 틀린 문장을 쓴 회원들을 호되게 나무란다. 60 중반이 넘어선 회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가끔은 그만두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그분들을 보면 만화 주인공 '들장미 소녀 캔디'가 떠오른다. 캔디는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고 웃으면서 달리고, 푸른 하늘 보고 노래를 부르며 견뎠다고 한다. 이분들은 글쓰기를 사랑하는 힘과 쓰려는 강한 의지로 이겨내는 듯싶다.

지난주 글감은 '직업'이었다.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글을 올리던 글벗의 글이 올라오지 않았다. 모범생이 무단 결석을 한 것처럼 괜스레 걱정이 됐다. 마감은 지나 버렸다. 글은 화요일 아침에서야 올라왔다. '서로 힘을 보태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학우들에게 미안해서 작년에 써 놓은 글이라도 올린다'라는 댓글도 함께 덧붙였다. 큰 바다로 나아가려면 좋은 배, 유능한 선장만으론 부족하다. 성실하고 적극적인 선원이 있어야 한다. 회원들의 글은 우리 수업을 이끌어 나가는 힘이다.

글벗들이 글을 쓰는 이유는 모두 다르다. 우리는 그 목적을 달성하려고 같은 시간 한곳에 모인다. 목표를 이루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마지막 수업까지 함께하면 좋겠다. 대항해시대, 항해자의 가장 큰 적은 '외로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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