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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산책 Aug 23. 2020

그는 안 하는 걸까? 못하는 걸까?

정리보다는 우리의 관계가 중요하지

‘한강이구려. 종이배를 띄워도 되겠어.’

싱크대 위에 물이 흥건하다. 신랑이 설거지 담당이고, 오직 설거지만 한다. 뒷정리는 없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존 그레이 저>를 읽은 적이 있다. 남자가 여자를, 여자가 남자를 이해할 수 있는 바이블이라고 불리는 책. 책에는 신랑이 집안일을 하게 하려면 칭찬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책에 있는 말을 진리로 받아들인 나는 그에게 아낌없는 칭찬을 했고, 지적하지 않았다. 그 나이 대에 비하면 거부감 없이 집안일을 잘하는 편이다. 그러나 부작용이 있는데 바로 


발전이 없다.     


싱크대는 물바다요. 빨래는 구겨져 있으며, 청소기가 지나간 자리에는 머리카락이 남아있다. 

이쯤에서 정말 궁금해지는 것.

'그는 잘하려는 마음이 없는 걸까? 아니면 정말 못하는 걸까?'

어느 쪽으로 생각해야 마음이 편할지는 정해져 있다. 

'그는 정말 못하는 것이다.'


청소에 대해 뚜렷한 역할 구분이 없어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나는 2가지 질문을 앞에 두고 생각했다. 집이 더러운 것이 더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가? 청소를 같이 안 하는 것이 더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가?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집이 더러운 것이 더 스트레스였고, 그렇다면 청소를 하면 될 것이고, 첫 번째를 선택했으니 두 번째는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에게 기대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청소가 재미있어지고(?) 으레 내가 하는 것이 되어 버렸다. (깔끔한 성격은 아니다. 그래도 우리 가족 중에는 으뜸이다.)     


토요일 오전 여기저기 정리하고 청소기를 들면 그가 안절부절못하고 청소기 있는 곳으로 온다. 청소하고 싶은 마음은 없으나 안 하자니 마음이 불편한 것이다. 나는 청소기를 건네주고 싶지 않다. 분명 구석구석 깨끗하게 청소가 안 될 것이므로. 잠깐 청소기를 앞에 두고 기싸움이 벌어진다. 불편한 마음을 해소하기 위해 청소기가 필요한 자와 좀 더 깨끗하게 청소하고 싶어 청소기를 뺏기고 싶지 않은 자. 결국엔 그에게 청소기를 양보(?)하고 나는 그동안 방치해둔 각종 물건들을 정리한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내 소유가 아니면 물어보고 버리는 수고(뭔가 없어지면 나를 의심하기 때문에)를 거치며 하나씩 버리지만 뒤돌아서면 또다시 쌓이는 물건들. (사람은 흔적을 많이 남기는 존재다. 이러한 흔적을 조금씩만 남기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게 그렇게도 불편하더니 이제 나도 익숙해졌다. 익숙해지니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그래서 그렇게 내려놓으라고 하는구나! 


18년을 부부로 살아온 나는 이제 싱크대가 한강이 되든, 빨래가 구겨지든, 방바닥에 머리카락이 굴러다니든. 내가 피곤하면 신랑의 노고를 선의로 받아들인다. 눈에 거슬리면 그 부분을 내가 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생각한다. (아니 최면을 건다.) 그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사실 집안일에 최선을 다할 필요까지야. 그냥 아무 탈 없이 먹고, 잘 수 있는 공간이면 족하지. 거기에 편안하게 서로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의 쾌적함이면 되지 않을까?     


집안일이 우리의 관계를 해치게 할 수 없다. 관계가 나빠지지 않을 만큼만 정리하면 되는 거라고 결론지으며, 그에게 면죄부를 준다.     




얼마 전 집안 살림을 남편이 하는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 그 집 남편이 요즘 새로운 취미가 생겨 청소를 소홀히 한다고 친구가 불만이 많다. 듣다가 한마디 했다.

그럼 네가 하면 되지. 그게 꼭 00 씨 일이야?

나는 무조건 여자 편은 아니다. 나는 집안일을 더 많이 하는 사람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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