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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산책 Sep 08. 2020

여보, 제발 투자 이야기만은...

이제 나도 내 뜻을 말하고 살아야겠다

- 잘 잤어?

우린 으레 잠에서 깨면 안부를 묻곤 한다. 그가 대답한다.

- 아니.

- 왜?

- 밤새 밖에서 자동차 경보기가 울리더라. 00아, 부동산 경매 말이야.

- 여보!

나는 그의 말을 차단한다. 그가 무슨 말을 할지 뻔하다. 밤새 잠을 설치면서 부동산 경매에 대한 유튜브를 본 것이다. 그는 대출을 받아 투자해보자고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결혼 초부터 경제관념이 달랐던 우리는 경제적인 문제로 많이 다투었다. 그 당시 말싸움으로 신랑을 이겨본 적이 없던 나는 그의 뜻대로 대출을 받아 그가 투자하자는 대로 따랐다. 결과는 


원금 손실


2번의 손실 이후 그는 투자 이야기를 접고, 오직 목공에만 전념했었는데 대출금을 다 갚고 이제 돈을 좀 모아 보나 싶었더니 다시 빚을 내서 투자하자는 말을 꺼내려고 한다.     


신랑은 이른 퇴직을 꿈꾼다. 모아놓은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는 세상의 온갖 일들을 다 경험해보고 싶어 한다.

직접 집을 짓고 싶어 하고, 트랙터와 트레일러, 모터보트 등 탈 것이라면 뭐든 운전해보고 싶어 하며, 다양한 목공 기구를 구비하여 나무와 완전한 사랑(?)을 나누고 싶어 한다.

신랑의 발목을 잡는 것은 언제나 돈이다. 그와 나의 차이는 나는 돈이 안 드는 것 중에서 내 취미를 정하고, 그는 정말 하고 싶은 것을 취미로 정한다. 사실 그가 더 행복한 사람일 테지만 그가 하고 싶어 하는 일들은 돈이 많이 든다. 그러니 나는 항상 방패를 들고, 그 취미를 내려놓으라 신랑에게 이야기하게 되는 것이다.     


- 여보, 당신은 이른 퇴직을 하고 싶다며. 그런데 대출을 받으면 그걸 갚기 위해 정년까지 일해야 할지도 몰라.

- 정년까지 안 하기 위해서 부동산에 투자하자는 거야.

- 성공하리라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어?


나는 돈에 대해서 좀 꽉 막힌 데가 있다. 그래서 신랑의 말을 원천봉쇄해버렸다.     

우리는 투자 이야기만 나오면 자연스럽게 유지되던 평화협정이 깨진다. 신혼 초야 내가 너무 힘이 없어(?) 신랑을 이길 수 없었지만 이제 나도 내 뜻을 말하고 살아야겠다. 달라도 너무 다른 우리의 경제관념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느껴진다. 그가 알고리즘의 대가 유튜브에서 또다시 부동산 투자에 대한 솔깃한 내용을 듣게 되면 우리는 또다시 맞서서 서로 설득하기 위해 불편한 시간을 가져야 할지도 모른다. 오늘은 내가 이겼지만 매번 승리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날이 많이 시원해졌다. 나에게 거절당한 투자 이야기를 잊기 위해서라도 그는 뭔가 몰두할 게 필요하다. 신랑이 밭에 가서 나무로 주방 도구를 만들겠다고 말한다. 이런 날씨에 나는 걷는 것을 좋아하므로 그를 따라나선다. 밭에 도착하자마자 명상 이어폰을 끼고 아무도 없는 밭 주변을 걷는다. 두 바퀴를 돌아 그에게 갔을 때 그는 고구마를 캐고 있다. 내가 걸으며 명상을 하듯 그는 땅을 일구며 몰입의 시간을 갖는다. 각자 몰입할 수 있는 좋아하는 일이 있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그의 옆으로 가서 고구마를 보니 색깔이 붉다. 호박 고구마를 달라고 해서 심었던 건데 꿀청 고구마인가 보다. 모래흙이라 호미로도 잘 파진다. 그가 고구마를 주면 나는 잔뿌리를 정리하고 밭을 덮어놓았던 비닐을 모아둔다. 그렇게 흙을 만지며 노는 것이 재미있다. 그리고 그와 함께하니 더욱 즐겁다. 투자 이야기만 안 하면 우린 이렇게 평화로울 수 있다.     


비가 한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하다 금세 굵어진다. 그가 말한다.


차에 들어가 있어. 비 맞겠다.


그는 소소하게 나를 챙겨주는 참 고마운 사람이다. 

이렇게 고마운 사람이지만 투자에 대한 생각은 좁혀지지 않는다는 것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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