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개의 역사> (Guest Talk 포함)
사실 이쪽도 <랫 필름> 못지않은 '제목 낚시' 다큐멘터리입니다. <랫 필름>에서 의도치 않게 낚였기에 정보를 찾아보니 '동물'보다는 '여성'에 관한 다큐멘터리임을 알았습니다. 실제로 영화도 정갈하게 차곡차곡 논리를 쌓아 결론에 도달하는, 혹은 특정 사건을 추적하면서 기록하는 류의 다큐멘터리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감성적인 에세이 같았습니다.
이 다큐멘터리가 재밌는 건 나(주체)가 궁금해서 추적하던 백구(객체)가 사라지면서 역으로 나란 존재가 왜 백구를 궁금해했는가, 즉 주체가 객체가 되고 결국 주체이자 객체라는 독특한 위치에 서게 된다는 점입니다. 좇던 객체의 사라짐에도 주체의 호기심은 남아 결국 여기저기를 떠돌다 마침내는 주체 자신에게로 회귀하며 다큐멘터리를 마무리합니다.
그래서 연출 역시 시간이나 자료, 사건 등을 일련의 논리로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비선형적으로 구성하고 있습니다. 에세이라는 느낌을 받은 건 그 때문인가 싶습니다. 또한 개와 주변 사람들을 조근조근 담아내는 연출자의 목소리와 태도가, 그리고 그 공간들이 한국이어서 더욱 감정적으로 와 닿았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전 이 작품에 큰 패착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작품만으로도 정확히 이해가지 않았다는 겁니다. 분명 '백구'로 시작했지만 끝까지 '백구'를 좇지 않았으면서 작 중 "결국 백구의 역사는 알지 못했다"는 내레이션은 위선적으로 느껴졌습니다. GT에서 "촬영 중 예기치 못한 사고에 방향을 잃었었다"는 연출자님의 고백을 듣고 나서야 이 영화가 가진 미묘한 방향성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관람한 세 작품 중에선 가장 아쉬운 완성도였습니다. 순간순간이 주는 경이로움은 있었지만 과연 이것이 다큐멘터리로서 적합한지는 끝내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거추장스럽게 느껴졌겠지만 촬영 도중 상황에 대해 좀 더 친절했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3. <유령의 도시>
다큐멘터리나 동물에 관심이 많으신 분은 <더 코브: 슬픈 돌고래의 진실>을 아실 겁니다. 일본에서 자행되는 돌고래 포획활동을 포착하기 위해 '잠입'한 일행의 이야기를 담았는데, 그 과정이 정말 웬만한 스릴러 못지않게 긴장감이 넘칩니다. <유령의 도시>는 딱 그런 느낌입니다. 그보다 훨씬 차갑지만 여기서는 정말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이들이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온갖 논란을 가져온 ISIS에 대응하는 RBSS(라카는 조용히 도살당하고 있다/Raqqa is Being Slaughtered Silently) 일원들이 <유령의 도시>의 주인공들입니다. 이들은 그야말로 '총성 없는 전쟁'의 한복판에 있는 이들입니다.
ISIS의 미디어 전쟁에 맞서는 이들의 이야기는 완벽하게 '여과 없이'는 아니지만 때때로 일원들이 겪었을 고통, 즉 고향의 파괴와 지인들의 사망 등을 그대로 전합니다.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의 과거 운동을 연상시키는 구석도 있고, 그 이상으로 죽음조차 불사하는 '영웅'의 아우라를 받기도 합니다.
사실 이 다큐멘터리의 가장 큰 장점은 전술한 두 작품과 달리 소재 자체가 가지는 힘이 무궁무진하다는 점입니다. 물론 연출자가 의도하면서 감정적인 부분을 이끌어내기도 하지만, RBSS가 처한 상황 자체가 경악할 만하다는 것 자체가 (비윤리적으로 들려도) 큰 무기입니다.
그래서 세 작품 중 가장 인상적이고(물론 이걸 마지막에 관람한 것도 있지만요), 실제로 많은 분들이 보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그래도 사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는 '피난민들의 잘못'(각종 범죄나 필요 이상의 다양성 강조)이 덮어지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물론 RBSS와 피난민들을 일치시킬 수는 없지만 작품 중 한 장면에서 유럽인들을 외부인으로 밀어내는 듯한 장면이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이해하는 마음에도 어딘가 불편한 기분이기도 했습니다.
0. 마무리
제가 관람한 작품들 리뷰는 이상입니다. 전체적으로 영화제의 규모가 크지 않아 현장의 느낌이라던가 그런 것도 딱히 없었습니다. 제가 혼자 설렁설렁 돌아다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확실한 건 '서울환경영화제'는 그동안 놓치고 있던 주변의 상황을 찬찬히 둘러보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영화제라는 겁니다. 단순히 환경에 그치지 않고 인간을 살펴볼 수 있는 순간을 많은 분들이 만나실 수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