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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thaul Jun 08. 2017

악녀

좋은 액션은 맞으나 좋은 영화는 아니다

초반에 경탄하고 중간에 실망했다가 후반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악녀>는 그럴싸한 오프닝으로 "엄청난 액션을 보여주겠다"라고 선언한다. 그 선언만큼은 실현하지만 영화 전체적으로 보여준 '욕심'은 결코 충족시키지 못한다.


먼저 오프닝 액션을 1인칭으로 구성했는데, 당연히 이 장면에선 광각 카메라가 쓰이면서 왜곡된 시선이 돋보인다. 안 그래도 숙희(김옥빈)보다 비대한 남성들이 더 큰 몸집으로 위압감을 선사하는 이 롱테이크에서 <악녀>는 여성이 느끼는 위기감, 두려움을 영화에 담고 있는 영화이지 않을까 짐작했다. 


이후 이어지는 장면들, 즉 기관에서 여성을 교육시키고 임무를 주는 장면들 역시 이 사회가 여성들에게 강조하는 여성상의 강압성을 담는 것이라 느꼈다. 그리고 그것을 은유적으로 잘 녹였기에 전반적으로 괜찮은 작품이 되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중반으로 가면서, 로맨스와 '엄마'라는 소재가 부각되면서 오히려 영화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런 접근법 자체는 통속적이니까 굳이 비판하지 않는다 해도 그 무감각했던 오프닝 장면, 게임처럼 상대를 죽이는 것이 부각됐던 장면이 과연 이 '숙희'의 것이 맞는지 헷갈리면서 감정선이 엇나가고만 것이다.


<악녀>는 선형적인 영화가 아니라 플래시백이 뒤섞인 비선형적 영화이다. 거기다 액션 자체도 현장감을 극대화한 방법을 사용, 다소 어지럼증을 유발한다. 그런데 여기서 쫓아가야 할 주인공의 감정선까지 어긋나니 도통 영화에 집중하기가 쉽지가 않다.


심지어 결말까지도 결국 이 모든 걸 헤쳐나간 여성의 '신화'를 만들려는 의지가 역력한데, 결코 그 신화가 기존의 틀을 깨거나, 그렇다고 완전히 현실 속에 종속되는 것도 아니다. 결국에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악녀>라는 제목에 걸맞은 결말을 내려버리는데, 이는 오프닝과 대구를 이루면서 참신하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보다시피 <악녀>는 썩 좋은 영화가 아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마음에 드는 건 그나마 이렇게 거론할 만한 영화적 요소들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잘 만든 영화는 아니지만 나쁜 영화는 아니고, 심지어 좋은 점을 몇 가지 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라면 카메라를 다루는 방식이다. <악녀>의 롱테이크 장면들을 보면 한 사람의 시선(대개는 숙희)을 취하지 않는다. 때로는 그의 뒤를 따르거나 앞서거나 하면서 하나의 '생명체' 같은 느낌을 준다. 그 지점이 필자에게 이 영화가 '뭔가'를 한다는 착각을 준 셈이기도 하다.


결론짓자면 좋은 액션이 담긴, 욕심은 많았던 영화라고 생각한다. 중반의 허술함도 만일 결말부가 좀 더 신화적인 이미지를 구축했다면 눈감아줬겠지만 그렇지 못했다. 좀 더 촘촘하게 영화를 구성했더라면 훨씬 좋았을 아쉬움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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