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계산, 빗나간 영화
타임루프물이 다양하게 나와도 어느 정도 기본적인 루트가 있다. 문제가 발생하고 그걸 주인공이 자각하기까지는 여러 번의 하루가 반복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식이다.
<하루>는 그런 타임루프의 전형을 벗어나는 것에서 성공했다. 그러나 그게 좋은 결과였느냐고 물으면 '시도는 좋았다'에 가깝다. 잘 계산된 영화의 설계와 달리 공감되지 않는 감정선이 있기 때문이다.
<하루>의 핵심은 90분이란 시간보다 훨씬 풍부한 사건이다. 그래서 초반부에 준영(김명민)은 인정이 많지만 논리적인 의사답게 아주 빠른 시간 내에 타임루프임을 알아차리고 고군분투한다.
이 과정은 분명 영화의 핵심 사건을 빨리 드러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템포가 당겨졌을 것이다. 그러나 관객들의 입장에서 준영은 정말 정해진대로 움직이는, 혹은 너무나도 비범한 인물로 비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식으로 <하루>는 무척 빠듯하게 사건을 전개해 나간다. 타임루프 영화가 가지는 단점을 타파하기 위해 전략적인 선택인 걸 생각하면 영리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감정적인 부분에 오면, 그동안 놓쳤던 연출력의 부재가 크게 느껴진다.
사실 <하루>는 그 나름의 매력이 있긴 하다. 영화의 사건이 주제를 기반으로 짜였다는 것도, 그리고 처음으로 강식(유재명)이 소개되는 순간의 감정적인 요소도 정말 흥미롭다.
하지만 딱 그 정도의 장점이다. 색다른 게 늘 좋은 건 아니고, 논리적인 게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말이 없어서 아름다웠던 강식의 등장을 생각하면 이 영화가 후반에 '대사를 쏟아내는' 순간은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또 이런 극적인 사건 이전에 선행하는, 일상을 그리는 파트가 지독히 상투적인 것도 아쉽다. 거기에 사용된 BGM의 과용은 심각한 정도고.
<하루>는 SF적인 상상력을 벗어난 타임루프 영화를 성립시켰다. 그 지점만큼은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그만큼 그 빈자리를 메웠어야 할 감정이, 그저 공허하게 흘러간다는 건 스스로의 장점조차 깎아먹었다. 영리한 전략이 보이기에 아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