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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thaul Jun 22. 2017

박열

뚜껑을 까보니 내용물이 달랐다

당연한 얘기지만 <박열>에서 <동주>를 기대하는 건 무리일 것이다. 애초 윤동주라는, 이제는 하나의 상징이 된 시인과 대중들에게 썩 유명하진 않은 무정부주의자를 어떻게 같은 톤으로 그려낼 수 있겠는가. 그걸 알기 때문에 <박열>은 포스터부터 일부러 강렬한 이미지를 주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막상 까 본 <박열>은 기대와는 참 많이 달랐다. 이 다름은 좋은 의미이기도, 나쁜 의미이기도 하다. 정말 신선하게 느껴지는 실화와 그것을 그려낸 방식은 기대했던 것과 달라서 좋았지만, 딱 보기에 강한 인상인 캐릭터가 기대와 다른 건 무척 아쉬웠다.


<박열>에서 기대했던 건 '망나니 독립운동가'에 가까웠다. "나는 개새끼로소이다"라는 카피부터 이제훈의 혼신을 담은 표정까지, 기존에 만났던 사극 속 인물과는 몹시 다를 거라고 예상했다. 영화 속 박열도 기대를 어느 정도 충족시켰지만 포스터의 기운과는 사뭇 다르다.


캐릭터가 예상과 다르니 영화의 전개도 달랐다. 엄밀히 말해 <박열>은 박열 원톱 영화도 아닐뿐더러 독립운동 영화도 아니다. <박열>은 박열과 후미코 콤비의 영화이며 이 둘의 로맨스 영화이자 촘촘하게 쌓아나가는 풍자극에 가깝다.

물론 영화에 담긴 실화는 무겁다. 관동대지진 여파를 피하고자 실행한 일본 정부의 저열한 수법은 응당 분노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박열은 그것에 치열하게 저항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능청스러움으로 상황을 좌지우지한다.


그런 박열의 성격과 일본인들 특유의 과장된 행동이 결합되자 이는 블랙코미디적인 웃음을 짓게 한다. 전체적인 상황을 조망해봐도 두 무정부주의자들에게 휘둘리는 일본의 모습이 헛웃음을 터뜨리게 한다. 사뭇 진지했던 전작과는 확실히 다르다.


그래서 <박열>의 비중은 박열-후미코, 일본 정부 둘로 나뉜다. 전자가 전적으로 많지만 후자도 적지 않다. 그러다 보니 영화의 흐름이 다소 묘해진다. 처음부터 100% 블랙코미디일 수 없었던 소재의 중압감이 불쑥 고개를 들 때면(예를 들어 권율이 연기한 이석 기자 등장처럼) 흐름이 흔들리는 기색이 있다.

129분의 러닝타임을 끌고 나가기엔 이런 흔들림이 꽤 자주 일어난다. 영화를 쫀쫀하게 만드는 긴장감도 크지 않다. 이런 류의 영화가 그렇듯, 예상 가능 범주에서 흘러가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캐릭터들 간의 교류나 관계가 더 촘촘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쉽게 여운이 가시는 영화는 아니다. 이 기묘한 이야기가 고증을 통해 재현한 드라마라는 것을 감안해도 마음속에 오래오래 남는다. 독립운동과 러브 스토리 모두 담아낸 만큼 자극적이지 않지만 심장을 파고들어 스미는 힘이 있다. 좀 더 좋았으면 하는 아쉬움도 그 여운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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