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thaul Jul 01. 2017

리얼

차라리 중간에 그냥 끝났더라면

정말 오랜만에 극악의 평가를 받고 있는 <리얼>. 냉정하게 말해 장단점이 확실한 영화다. 김수현이란 배우를 믿고 투자된 자본이 완성시킨, 아주 화려한 볼거리를 끊임없이 쏟아낸다. 요즘 어떤 영화에서도 볼 수 없는 초현실적인 암흑가를 나열하며 극단적인 이미지를 구축한다. 딱 기대했던 것처럼, 엉성한 스토리에 화려한 비주얼은 그럭저럭 마음에 들었다. 이 영화가 90분에서 끝났다면.


지금 '영화가 90분으로 만들어졌다면'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90분, 종이 땡 치고 영화 필름이 타버려서 끝까지 못 봤다고 해도 이보다 나았을 것이다. 90분이 넘어가면서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스토리에 개연성을 억지로 쑤셔 넣고 후반부를 엉망진창으로 만들 바엔 그냥, 아예, 어떤 조짐도 없이 90분, 땡 끝났어도 좋았을 것이다.

모두가 비난 일색인 상황에 비하면 그래도 나름대로 괜찮게 본 편이다. <내부자들> 이후 쏟아지는, 현실적이라는 컨셉을 앞세워 반복적인 이미지의 영화들보다 <리얼>처럼 대놓고 자극적이고 욕망에 가득 찬 영화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굳이 건강식보다 불량식품을 집어먹는 마음처럼.


하지만 '액션 느와르'라는 <리얼>의 말도 안 되는 액션 장면에서 반가움이 와장창 깨졌다. 액션의 컨셉도 전혀 없이 그저 멋있고 타격감만 좋은 장면을 만들다 보니 최악의 액션 장면이었다. 영화의 화려한 비주얼과 몽환적인 이미지가 그 순간 '허세'였다는 걸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또 애초 두 장태영 모두 악인에 가까운 인물이다. 복수하려는 장태영도 남의 여자를 훔쳐보고 그 대용품을 만드는 사이코이다. 만일 그런 인물상을 끝까지 가져갔으면 피카레스크로선 성공했을 것이다. 어떤 영화에서 김수현급의 배우가 1인 2역으로 악당을 연기하겠나. 


하지만 <리얼>의 후반부가 갑작스럽게 전형적인 멜로를 형성하면서 그런 기대조차 무너졌다. 두 장태영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 끼어넣은 설정은 '영혼 바꾸기'나 '복제인간'보다 더 허술했다. 그나마 좋게 보던 관객들조차 후반부에서는 그저 넋 놓고 '왜 이따위로 전개되지?'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암굴왕'을 연상시키는 초반 전개와 소품, 사이키델릭한 이미지의 비주얼, 믿을 만한 연기력의 배우들, 이 모든 장점을 <리얼>은 스스로 집어던졌다. 누굴 탓하겠는가, 영화 제작 때 브레이크를 자처한 이가 없던 걸 탓할 수밖에.

매거진의 이전글 박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