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의 벽은 점점 높아지는데 이를 어찌할꼬.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스파이더맨이 등장한다고 했을 때, 안 기뻤을 이가 있었을까. 많지 않은 분량에도 영화에 깊은 인상을 남겼던 스파이더맨이 이렇게 단독 영화로, 그것도 마블에서 나온다 하니 어떻게 기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막상 뚜껑을 까 보니 급하게 볼 필요가 없었겠구나 싶다. 재밌는 영화냐고 물어보면 재밌다고 하겠지만, 좋은 영화냐고 물어보면 글쎄올시다. 소독용 알코올처럼 순간의 시원함은 있지만 오래가지는 못한 느낌이다.
'샘스파'(샘 레이미가 연출한 삼부작)를 보면서 자란 세대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결코 그 스파이더맨에 갇힌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도 봤고, 원작의 내용도 어느 정도 알고 있으니까. 웹 슈터나 음울하기보다 쾌활한 그 성격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스파이더맨: 홈커밍>은 '큰 힘엔 큰 책임이 따른다'라는 주요 테마를 강조하기 위해 '무책임'을 지나치게 강조한다. 피터 파커(톰 홀랜드)는 물론이고 네드(제이콥 배덜런), 해피(존 파브르) 등 주변 인물까지 무책임한 행동과 발언들을 남발한다.
피터가 다시 마음을 잡는 과정엔 아이언맨인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충고가 있는데, 좋은 대사에도 불구하고 (미안한 말이지만) 삼촌의 죽음만큼 강렬한 모티브가 되진 못한다. 무엇보다 메이 숙모(마리사 토메이)가 자신의 안위 때문에 무척 걱정한 걸 목격하고도 끝내 전장으로 뛰어드는 피터를 보면 성장한다는 공감보다는 여전히 대책 없는 청소년 같아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후반부로 갈수록 연출력이 다소 부족하다. 스파이더맨이 진정으로 각성하는 장면은 괜찮지만 비행기 추격전 이후 벌어지는 벌처(마이클 키튼)와의 격전에선 심리적인 묘사가 더 촘촘했어야 감정선이 더욱 살았을 것이다. 이 부분이 '스파이더맨'이란 히어로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부분임에도 피터가 선택하는 것에 무게감이 적다.
마블 스튜디오의 작품이 많아지면서 각 작품마다 개성을 살리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앤트맨>이나 <닥터 스트레인지>는 각각 '크기'와 '아스트랄계'를 강조하면서 성공적으로 데뷔한 것처럼. 반면 <스파이더맨: 홈커밍>은 그런 맛이 없다. 그저 초인적인 청소년이 있고 그게 하필 스파이더맨 같은 느낌이다. 아무리 완성 전의 히어로라 해도 캐릭터의 특성을 부각한 인상적인 액션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단점이다.
이런 이유로 좋은 '영화 한 편'을 봤다기보다 '긴 예고편'을 봤다는 느낌이 강하다. 원작 파괴 수준의 복선은 다음 단독 영화에서나 풀릴텐데, 한참 먼 느낌이라 기대보다 기운이 빠진다.